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작년 연말 문화예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서울시향의 새 대표로 최흥식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임명됐다고 한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박현정 전 대표 사퇴 후 6개월간 공석이었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이제 외형적으론 안정을 찾을 것 같아 보이지만, 정명훈예술감독이 최근 본인의 문제와 관련해서 법적 대응을 시사하고 또 시향퇴진의사를 언론에 흘리는 것으로 봐선 완전히 안정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다.

이번에 서울시향 대표에 선임된 최흥식씨는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금융통이다. 개인적으로 클래식에 상당한 조예를 가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하나은행은 예전부터 문화예술에 많은 지원을 해 왔던 기업이다. 단순한 금전적 후원을 넘어 고객들에게 문화적 식견을 높여주는 교육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하나클래식'이라는 아카데미를 통해 정기적으로 고객들에게 유명한 문화계 인사의 특강을 제공한다거나 공연장에 직접 가서 공연을 감상하는 체험활동을 지원하는 등 꾸준하고 내실있는 문화지원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보니, 작년에 신임 최흥식대표와 정명훈감독 그리고 박현정 전 대표가 나란히 서서 하나은행이 서울시향을 후원하겠다는 협약식을 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보니 참 묘하고 색다른 장면이다.

하나은행이 2006년부터 서울시향을 후원했으니 이런 종류의 사진은 허다히 볼 수 있다. 다만, 도움을 주는 기관의 장에서 도움을 받는 기관의 장으로 입장이 바뀐 최대표의 모습이 잠시 어색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력을 보니 최 대표는 엘리트코스를 밟은 금융인으로서 문화예술에 해박한 지식과 감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원활동을 통해 이미 서울시 관계자나 정명훈감독과의 인간적 교감도 이뤄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달리 말해 이 어려운 시점에 다른 어떤 카드보다 안전한 선택이 될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아울러 서울시향 대표의 연봉이나 예우수준이 문화예술계에선 상당한 수준일 수 있지만 그가 살아온 금융계의 기준으로는 턱도 없는 수준일 거라는 점은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그는 다른 어떤 조건보다 후원자로서 서울시향이 잘 되기를 바랐던 순수한 마음의 발로로 직접 해결사로 나섰을 것이란 추측이 든다.

다만 박현정 사태에서도 봤듯이 조직문화가 다르다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지나치게 그 동안 살아왔던 방식이나 본인의 주의주장을 서울시향에 담아내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서울시향은 정상의 괘도에 올라 있는 연주단체다. 후원자로서 가졌던 따뜻한 마음 그대로 지켜준다면 대표로서 훌륭하게 성공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것이다.

요즘 문화예술단체들이 어느 날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문화예술인 출신의 경영자가 전문성에선 앞서 있지만 후원그룹의 인력풀이 빈약하기 때문에 재원조달에 한계를 노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관계 또는 재계 출신의 경영자를 영입하고 있는데, 이런 콜라보는 문화예술계에는 실익을 주고 개인에게는 깨끗한 이미지로 또 다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가 다 만족할 수 있는 조합일 가능성이 많다.

우리지역에도 문화예술단체나 기관들이 많다. 또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할만한 기업체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들 간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은 아직 요원하다고 판단한다. 문화예술단체는 기업을 단순히 후원이나 협찬을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그에 반해 기업들은 이런 단체들을 돈이나 뜯으러 오는 앵벌이처럼 불편해 하는 게 현실인 것이다.

예전에 ○○사이다를 생산하는 음료회사에서 우리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후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는데 전화를 받은 직원이 금액을 대략 정해 즉답을 한 것이다.

보고를 받은 나는 도움을 주고자 마음을 내어 연락을 취해 왔을 때에는 상대방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정말 '사이다 한 병'이라도 감사히 받겠다고 하는 것이 도리임을 설명해줬다.

시작은 그렇게 편하게 해야 얼굴을 보게 되고 작은 일부터 도모하다 보면 신뢰가 생기고, 그러다 지속적이고 오랜 기간 상호 도움이 되는 관계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은 일방적인 지원의 시대가 아니다. 서로의 필요가 충족되는 협업의 형태가 돼야 한다.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후원을 염두에 두고 그들과 한 배를 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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