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삼독(三毒)은 탐욕·성냄·우치(愚癡)의 세가지 번뇌를 말한다. 잘된 것에는 남보다 내가 잘 했다고 믿고 오직 삼화(三火) 또는 삼구(三垢)라 말하며 사회 분위기를 해치는 부정 근본이므로 삼불선근(三不善根)이라고 법문에 말한다.

삼독은 청정자성을 더럽히고 소리없이 봉사와 근본을 위해 행위하는 사람의 마음을 해친다. 또한 원만한 공덕을 손상시키는 큰 도적이기도 하다.

탐욕심을 버리고 멀리해 청정심을 기르고, 계곡에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를 자연의 소리로 믿고 성내는 마음을 없이해 고요한 마음을 키우며, 나 자신만 소리 내지 말고 어둑한 마음을 없애 밝은 마음을 키우고 곧 자성의 원만한 공덕이 나타나면 온갖 선근이 자라나게 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1% 소리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소리는 계곡 물처럼 소리 없이 흘러가야 한다. 청정한 마음과 평화롭고 자비한 마음, 지혜롭고 밝은 마음은 본래 우리의 마음인 것을 알아 삼독심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 사람은 삼독을 없애고자 하면 경계를 당해 삼독과 대립하게 돼 있어 삼독을 없애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마음을 긍정적으로 돌려 삼독은 본래 없는 것이고, 삼독을 일으킨 경계도 또한 공적한 것을 알아 이 공적한 마음을 반조하면 저절로 삼독이 우리 앞에 스러지게 된다.

우리는 삼독이 없는 데서 삼독을 제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소리에 듣지도 보지도 않는 행동으로 가야한다. 행동은 보이는 것에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법 삼학은 불법을 행동해 깨달음을 이르는데 반드시 닦아야 할 배움의 실천이다.

계학은 우리 마음의 청정을 지키고 사회의 소리를 우리자신의 말과 행실을 단속해 마음의 진실을 지키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정학은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 우리마음이 힘들고 소외되는 것에 안팎에서 일어나는 동요에 그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 한결 같음을 갈고 닦는 것이다.

혜학은 마음의 밝은 빛을 드러내 바르게 쓰는 지혜를 말한다. 삼학의 실천은 곧 99%의 소리에 1% 흔들림을 보고 듣고 표현하는 일이라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삼학을 실천해야 한다. 그 행동에 계행이 없으면 우리 사회 아니 우리들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거칠어져서 고요하고 맑은 본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흔들리고 맑지 못하면 지혜가 없이 옳고 그름과 선악을 분별 못하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계를 그릇으로 표현한다. 그릇이 완전하고 소리도 색깔도 튼튼해야만 거기에 맑은 정(定)의 물이 담기게 된다. 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만 거기에 밝은 지혜의 달이 원만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만 소중하다 해서 정수행을 소홀이 여기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삼학마음으로 삼독을 버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근본 규범으로 삼아 살아가야 한다.

삼독의 마음으로 보는 것은 형상이 있는 것은 욕심으로 된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생각이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의 욕심으로 근본은 허망한 것이다.

제행무상인은 우리와 우리들을 둘러싼 모든 욕심과 매체소리에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하며 향상된 것이 없다는 가르침인데 이것은 범부들이 우리사회를 청명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 모든 사회소리에 현상이 공허하고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깨달음의 진리사회는 영원하며 남의 욕 된 소리도 삼독을 버리면 삼학의 마음이 우리사회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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