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일찍이 할머니를 여의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재산을 많이 모아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불행하게도 슬하에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조카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그 중에 막내조카를 양자로 들이려고 했지만 만일 양자가 들어오면 모든 재산이 양자에게 돌아갈까 봐 딸들이 극구 반대해 결국 이름만 양자일 뿐 집에 들이지 못했다.

딸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모든 재산을 딸들에게 나눠 주면 딸들이 아버지를 편하게 잘 모실 터니 그렇게 해 달라고 졸랐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 나이에 일을 할 수가 없고 더구나 마누라도 없는 터라 차라리 딸들 집에서 지내면 더 좋을 것 같아 모든 재산을 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할아버지는 큰딸 집에 갔다. 처음 며칠 동안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챙겨 아버지를 모시는 듯했지만 한 달이 조금 지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귀찮아하는 표정이 눈에 훤히 보였다. 할아버지는 둘째 딸집으로 갔다. 둘째 딸도 처음에는 아양을 부리며 잘 대하다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방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다시 막내딸집에 갔다. 막내는 평소에 귀염 받고 컸으니까 아버지를 박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내는 오자말자 언니가 둘이나 있는데 자기에게 왔다고 타박을 주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들으라는 듯이 대놓고 언니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끝내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해 막내딸집을 나왔다.

이제 갈 데가 없었다. 재산을 모두 딸들에게 주고 나니 빈털터리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양자를 들일 걸 하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할아버지는 거지가 되어 떠돌아 다녔다. 옷도 헤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몸에는 때가 쌓여 흉한 냄새를 풍겼다.

하루는 얻어 먹을 힘도 없어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졸고 있는데 말로나마 양자로 정했던 조카며느리가 그 앞을 지나가게 됐다. 거지가 된 할아버지를 양자며느리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 불쌍해 보이는지라 집으로 데려가 먹을 것을 챙겨 줬다. 양자는 밭에 나가고 없었다.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도 내 드렸다. 그때서야 서로를 알아봤다.

"어버님, 이제부터 저희 집에 사십시오.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착한 며느리는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없이 함께 살자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착한 너희들에게 재산을 줄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마침 이 집에는 어렵게 낳은 자식이 하나 있었다. 피곤한 할아버지는 갓난아기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자면서 이불을 끌어 당겨 덮는다는 것이 잘못해서 아기를 덮어씌워 아기가 숨이 막혀 죽고 말았다.

양자가 들어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할아버지도 며느리도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양자가 들어왔다. 며느리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이것도 다 운명인 걸 어떻게 합니까? 걱정 마십시오. 자식이야 또 어떻게 낳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아버지를 저희들이 모실 터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사시도록 하십시오. 여보, 당신 생각은 어때?"
"저도 좋아요."

며느리도 흔쾌히 찬성했다. 세 사람은 죽은 아기를 안고 묻어주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양지바른 곳을 택해 묘 자리를 파고 있는데 그곳에서 놀랍게도 커다란 황금덩어리가 나왔다. 모두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아기를 묻으려고 하다가 황금덩어리에 걸려 아기를 떨어뜨렸는데 그 충격 때문인지 죽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 후 할아버지는 양자부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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