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작가 신경숙이 본인의 단편소설 '전설'이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렵게 해명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 답변이 썩 흔쾌하지가 않다.

"표절이란 문제제기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제는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의혹 제기 후 1주일 만에 나온 해명치곤 너무 문학적이지 않은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듯 보이는 것이 마치 독자나 국민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심산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이런 해명이 설득력을 가질 리 만무하다.

문학계에선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유를 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표절과 관련한 논쟁은 문학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예술 전반에 걸쳐 오랫 동안 논쟁과 다툼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예술의 영역이 상업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최근엔 훨씬 심각하고 사나운 모습으로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논문 표절과 관련해서는 인생을 던져 쌓아 온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부메랑으로, 본인과 주변을 주저앉히는 흉기가 돼버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법적·제도적·관행적 장치들을 많이 강조하고 적용하지만 아직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네티즌이 사회관계망(SNS)에 올린 표현이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패러디는 원본을 알고 있으면 재미있는 것이고, 오마주는 원본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이고 표절은 원본을 감추고 싶은 것"으로 정리해서 폭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표절 이야기가 나오면 대표주자로 다루어지는 작품이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끄집어  내는 얘기라 식상하기도 하지만,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표절을 오랫동안 화제에 오르게 했고 당시 작곡가의 해명이 있은 이후 유사 사례 때마다 교과서처럼 많이 인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다시금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5번'은 '민해경교향곡'이라는 재미있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민해경이 부른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중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 미소를 띠어봐도 마음은 슬퍼져요' 등 부분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5번' 4악장에서 계속 반복되는 메인테마와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표절시비가 일었던 1982년 시기는 컬러TV 시대가 도래하는 변혁기로서 새로운 질서들이 필요한 시기기도 해서 많은 문제제기들이 범람했던 시기기도 했다.

사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중 6번 '비창'이 가장 유명해 보이긴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나 세련미로 치자면 '교향곡 5번'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교향곡 제4번'을 만들고 20년이 지난 후 쓴 곡으로 차이콥스키가 작곡가로서 물이 오를만큼 오른 시기에 만들어진 수작이다. 

특히 선율적 흐름이 강해 다른 작곡가들이 훔치고 싶은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진다. 그런 유혹을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의 작곡가 이범희도 외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범희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 조용필의 '들꽃', 혜은이의 '독백', 최백호의 '고독', 윤시내의 '공부합시다',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되어',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 등 당시 인기 가수들에게 전방위적으로 곡을 줘서 히트시킨 스타 작곡가로서 '히트곡 제조기'로 불렸다.

그런데 이범희는 서울예고·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나온,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원이었다. 당시 가요계에서 활동하던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훨씬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체험적으로 완성돼 있었을 것이고 고전으로부터의 '차용'에 익숙했을 법 하다. '표절'과 '차용' 그리고 '인용'은 늘 분간하기 어렵다. 다만 작곡입시나 경연대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를 살펴보면 대략적인 틀이 보일 것 같다.

'마디'가 둘 모이면 '동기'가 되고, '동기'가 둘 연결되면 '작은악절'이 된다. 단위로는 네마디가 되는 셈이다. '동기'를 모티브라고 하는데, 옛날 과거를 볼 때 '시제'를 주고 글을 쓰게 했던 것과 유사하다.

'동기'를 주고 작곡을 하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 작곡경연대회의 형식이라면 이 보다 두 배나 많은 '작은악절'을 그대로 베껴 놓고 그를 애매하게 부정하는 듯 했던 이범희의 당시 해명은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덕분에 오늘은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어 보았다. 집에 가서 '오마주'의 심정으로 차이콥스키를 들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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