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이탈리아의 작가 콜로디(Carlo Collodi)가 1883년 지은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은 소목장이 제페토가 장작을 깍아 만든 인형, 피노키오가 철부지 개구쟁이처럼 제페토의 속을 썩이며 온갖 모험을 벌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물론 동화답게 마지막에는 고래 배 속에 갇힌 제페토를 구출하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피노키오'에서 제일 상징적인 장면은 거짓말을 할 때마다 길어지는 코다.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순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전에 방영됐던 어떤 드라마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사소한 거짓말인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지만 양심에 반하는 심각한 거짓말인 경우에는 모든 상황이 바로 잡힐 때까지 딸꾹질이 지속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피노키오 증후군'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거짓말을 몇 가지 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대는 '충동적 단계'와 거짓말을 감추거나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습관적 단계'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공상허언증'과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에 도취돼 사실인 것처럼 믿게 되는 '뮌히하우젠증후군'으로 나누어진다. '공상허언증' 이상으로 가게 되면 일종의 병으로 보아야 하는데, 문제는 거짓말도 용불용설처럼 반복될수록 양심의 가책이나 주저함이 없어지며 진화한다는 것이다.

'피노키오 증후군'의 반대 개념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들 수 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용어이다. 미국의 여류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 작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 씨' 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톰 리플리가 재벌의 아들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 죽은 친구로 신분을 속여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소설이다. 거짓을 감추기 위한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리플리의 행동은 완전범죄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죽은 그린리프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진실이 드러난다.

1960년 개봉된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흥행으로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병리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연구대상이 됐고 실제로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면서 새로운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수년 전 이다해가 출연한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었다. 얼마 전 미국 유학 중인 천재수학 소녀의 하버드와 스탠포드 동시 입학과 관련한 해프닝은 그녀가 보여준 거짓말의 전개 양상으로 보아 '리플리증후군'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메르스 사태와 맞물려서도 거짓말 행진이 줄을 잇고 있다. 출근하기 싫다는 이유로 메르스에 걸렸다고 거짓을 얘기하여 방역당국과 회사 모두를 발칵 뒤집어 놓는 황당한 일들도 여럿 있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의사(35번 환자)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재건축 조합원 1500여명이 모인 곳에 참석했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해당 환자가 거짓말이라고 반발하다 급기야 서울중앙지검이 허위사실 유포죄로 명예훼손 전담부서인 형사 1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에 최소한 서너 차례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아주 사소한 거짓말까지 카운팅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거짓말이 생활 속에서 자기방어 또는 원만한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을 위해 동원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는 '리플리 증후군'의 고전에 속할 법한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한 개인의 거짓말이 개인의 범주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들었다 놨다하며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CCTV와 폰 속에 내장된 수많은 카메라 덕분에 내가 언제 세상의 주인공이 될지 모를 만큼 조심스런 환경에 살고 있다. 증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준엄하고 무거운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거짓말'은 웬만하면 공동체의 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더 탄탄해져야 하고 불필요한 피해의식을 강요하는 여러 가지 장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피노키오의 코처럼 순진한 거짓말조차도 사라지는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살짝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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