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 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우리의 행동이 업이다. 업이란 말 속에는 행위와 의지에 의한 마음의 활동, 즉 짓는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뜻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활동하거나 말로 생각을 표현한다. 뜻이 먼저 있고 그에 따른 말이나 행동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위 환경이나 성정과 함께 나타나는 온갖 생활 여건들의 일차적 원인은 자신의 업이다.

우리들 자신과 주위환경을 만들어 내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행위는 행위가 끝남과 함께 없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불씨로 성장해 반드시 결과를 부르게 된다.

인생에 과보를 받아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 업을 인업이라고 한다. 모든 업은 그 행위의 동기가 중요한데 이는 동기에 따라 선악의 업을 결정짓게 되기 때문이다. 착한 업을 지으면 사람으로 지속 되는 것이다. 지속되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산하대지와 같이 서로가 공통되는 과보를 받게 하는 업을 공업이라고 하고 개별적인 고유의 과보를 받은 업을 불공업이라고 한다.

선업은 선과를 가져오고 악업은 악과를 가져온다면 우리는 마땅히 선이든 악이든 업을 짓지 아니하고 생가윤회를 벗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업을 지으면 그 과보를 업을 지은 현실에서 받는데 이것을 순현업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행동하면 악업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현실에는 항상 마음을 닦고 밝은 자성을 깨닫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자성을 깨달으면 비록 지은 업이 나타나더라도 깨달은 사람에게는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대체적으로 천상은 착하고 복되며 도력이 있는 성인이 사는 곳이라 하신다. 우리 인간은 지은 업에 따라서 사람의 개성과 태어나는 환경이 달라진다 한다. 아수라는 하늘에서 쫓겨났으므로 하늘사람 아닌 아귀에 태어났던 중생이 불법을 수호해 선행을 한 공덕으로 신통을 얻어서 허공을 자류롭게 다니게 되는 아수라와 하늘에 있다가 복이 다함으로 아수라로 떨어진 사람 아수라와, 기운이 세고 두려움이 없어 싸움을 잘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표현하는 축생 아수라가 되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좋은 행이라 할 수 있다. 굶주리고 시장하되 먹을 것이 없고 먹을 것이 목에 넘어가면 목에서 불길이 솟는 다고 하니 고통의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을 미혹하게 해 보게 되는 마음의 파동이다. 뉴스에 기준이 되는 것에만 관심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미혹함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해 어렵게 하고 미혹하게 하여 끊임없이 마음을 더럽히게 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번뇌를 참지 못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 때문이다.

태어날 때 본래 청정해 일체 대립을 초월한 절대적 본성이 미묘하고 또한 영묘해서 일체를 비추지만 사람은 미혹해 스스로 혼란을 일으킨다. 좋고 나쁘고 맞고 안 맞고를 분별해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물리쳐아 한다. 맞는 것은 집착하고 맞지 않는 것에는 성을 내면 우리 마음은 어지러워지고 탁하게 돼 본성이 지니는 자유와 청정의 공덕과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본래 청정속에 살면서 무단히 한 생각과 미흡한 것이 시초가 돼 끝없는 번뇌를 낳게 되고 거기서 속박과 고통을 받게 된다. 번뇌는 원래 미혹에서 난 것이며 미혹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착각이 우리마음을 흔들어 대는 것이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에 착각하지 말고 표현하는지 현실을 숙고해 미혹을 돌려 깨달음을 이룸으로써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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