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칼럼위원

▲ 박재홍 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예전에는 청소년기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적어 '원래 저 나이 때는 다 저래'라는 말로 치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1위는 수년째 자살이 차지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 존재합니다.

적게 잡아 우리나라 청소년들 중 우울증을 가진 아이는 전체 청소년의 5%라고 합니다. 최소한 20명중 한 명이란 이야기 입니다. 더욱이 요즘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경쟁 속에서 대안이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우울에 빠지는 청소년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들의 우울증은 성인의 우울증과는 좀 다른 경향을 보입니다.

첫째, 청소년들은 아직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우울해'라는 말 보다는 '짜증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학교·친구·부모님·형제 모두 짜증난다고 합니다. 자칫 짜증 많은 것이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거쳐가는 일시적인 행동이려니 지켜볼 일만은 아닙니다.

둘째, 신체증상 호소가 많습니다. 우울한 아이들이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머리 아프고 배 아프고 여기저기 아픈데 병원 가보면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아프다는 이유로 보건실에 계속 누워있거나 조퇴를 하거나 심하면 학교를 안 가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셋째, 게임이나 인터넷에 과도하게 몰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할 때 우울감을 떨쳐 버리려고 스스로 노력하게 되는데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것이 스마트폰·컴퓨터 게임·채팅 등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라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어 부모님과 마찰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것들에 몰입해 있을 때는 잠시 우울감을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하고 점점 더 우울감이 심해집니다. 자기 할 일을 못하고 게임에 빠져 있다면, 정상 발달을 하지 못하고 또래들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넷째, 일탈행동이 많아집니다. 잘 지내던 아이가 점점 귀가 시간을 어기고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거짓말이 늘어나거나 학교 가기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심하면 술·담배에 손을 대기도 하지요. 소위 비행청소년이라고 하는 아이들 중에 우울증을 가진 아이들이 상당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들은 일탈행동 밑에 깔린 우울증을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진료실에서 부모님과 우울증 아이를 면담하다 보면 아이가 우울하고 아무 의욕이 없고 죽고 싶은 적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이 깜짝 놀라면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고할 때가 많습니다.

청소년들은 원래 부모님과 대화를 잘 안 하는 경향이 있고 우울한 아이들은 더더욱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간단하게나마 아이들과 매일 이야기 하는 습관을 들이셔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아이를 심문하듯이 꼬치꼬치 캐묻지 마시고,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어주시면 됩니다. 대화가 없었던 사이에 갑자기 대화를 하겠다고 해서 순식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시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관심을 표현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우울증에 빠졌다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 정신차리면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들은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울증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은 의지가 약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뇌의 병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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