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국 칼럼위원

▲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내가 태어난 함안 칠원은 면 소재지에서도 내를 건너고 산을 넘어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은 걸어야 갈 수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시골에 돌아가서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이 언제나 가슴 속에 못 다한 숙제처럼 또는 이루고 싶은 꿈처럼 남아있었다.

5년 전 거제에 와서 공증사무소를 하게 됐고 상당한 기간 동안 여기서 떠날 계획이 없으니, 시골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거제 이곳저곳 시골 땅을 알아보고 비교적 싼 지역인 거제면과 둔덕면의 경계쯤에 있는 작은 동네 뒤쪽에 작은 밭을 마련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인 작년 봄부터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닭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천진난만함과 본능에 따른 행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처음에 부화한지 한 달쯤 된 병아리 16마리를 산 이후에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얼마나 보고 싶던지.

처음 6개월간 병아리는 너무나도 빨리 자라서 일주일 만에 보면 훨씬 커 있었고 가을이 되니 다 컸는지 알을 낳기 시작했다. 그 첫 알을 얻은 기쁨이란!

어릴 때 살던 시골에서 암탉이 알을 낳은 후에는 특이한 울음을 울었다 '꼬꼬댁 꼬꼬꼬' 하는 특유의 리드미컬한 노래였다. 겨울 시골에서 따스함이 있는 곳은 드물었기에 그 닭 알의 따스함이 그렇게 더 사무쳤을까?

그러고 보니 닭이 우는 울음에는 5~6가지가 있고 다 그 나름의 다른 의미가 있는 듯하다.  수탉이 목청껏 크게 우는 '꼬끼이이오', 수탉이 먹거리가 있다고 암탉을 부르는 소리 '꼬꼬꼬꼬꼬'. 십여년 전 일본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컴퓨터로 분석해 사람의 말로 변환해주는 기술이 개발됐다고 했는데 닭은 그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닭치고'라는 코미디 프로를 보게 됐다. 닭이 금세 잊어버리는 특성을 참으로 재미있게 잘 표현했다. 닭은 1초, 2초 만에 잊어버리지만 모든 것을 다 그렇게 잊는 것은 아니다. 모이를 주는 사람과 도구와 소리 등은 잘 기억한다. 서열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암탉 사이에도 서열이 엄격해 모이를 먹을 때 서열이 높은 암탉이 낮은 암탉을 부리로 쫀다. 이때 약한 자가 대항하면 결투가 일어난다.

과거는 기억함이 좋을까, 잊어버림이 좋을까?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환자는 행복할까? 아무리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해도 치매환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기억에 있어서 사람이 닭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인간은 과거를 기억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단점도 있다. 과거는 다만 경험으로서 받아들이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훌륭한 디딤돌이 된다. 그런데 만일 과거에 사로잡혀서 상처로 받아들인다면, 또는 현재의 비참한 처지와 비교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차라리 닭처럼 기억하지 못함이 훨씬 낫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육식의 본고장인 유럽과 북미에서 비거니즘(Veganism·완전채식) 열풍이 불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던 우리들은 거꾸로 최근 20~30년 사이 급격히 육류 소비가 늘었다.

공장식 축산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농장은 공장이 되고 농가는 기업화됐으며 가축은 '식품'이 됐다. 대규모 밀집사육과 밀폐된 축사는 바이러스의 온상이 돼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거의 매해 발생하게 됐고, 그때마다 살처분을 한다. 엄청난 살처분 보상금이 국민의 혈세로 지출됐다. 매몰지 주변의 상수도를 정비하는 데 투입된 예산도 엄청나다.

육류를 향한 끝없는 이 욕망이 과연 본능인가? 우리는 육식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당장 모두가 채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공장식 축산과 과도한 육식만은 삼가자. 내 목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혀의 맛을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음에 대해 한 번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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