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 학교교육과 각종 캠페인을 통해 매장문화에 대한 선호의식 바꿔최첨단 오염방지 시설과 위생적인 환경에다 끈질긴 대화 통해 협의점 찾아

 

인구 26만의 거제시는 매년 9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고 이들 가운데 76%인 730여명이 화장을 선택하고 있다. 사업비 84억원을 들여 화장한 유골 골분 2만3232구를 안치할 수 있는 공설추모의 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화장장 설치는 요원한 실정이다. 현재 화장을 선택하는 거제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인근의 통영시립화장장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통영시립화장장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통영시가 지난해 말 거제시에 당초 요구했던 분담금 30억원이 너무 적다며 총사업비 228억 가운데 절반가량인 100억원을 부담하라고 나서 거제시와 통영시의 통영시립화장장 건립 협의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사업비를 부담하느니 거제시가 직접 화장장을 건설해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선진장사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거제신문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화장장 설치로 갈등을 겪고 있는 타 지자체의 상황을 살펴보고 지역민들과의 합의와 동의를 바탕으로 화장장 설치사업을 원만히 마무리한 지자체의 사례 등을 통해 거제시와 지역사회가 화장장 설치문제를 어떠한 방법과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지를 집중 조명해 본다.

 

 

 

▲ 세계 최고의 화장율을 자랑하는 일본은 전국 곳곳에 2000여개의 화장장이 조성돼 있다. 그 가운데는 도심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화장장도 있지만 철저한 관리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사진 선내는 주택가와 수변공원 인근에 자리잡은 토다 장제장.

 

세계 최고의 화장율을 자랑하는 일본에서도 화장장 건립은 힘든 사업 가운데 하나다. 일본 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일본인 사망자의 화장율은 99.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옛날부터 화장을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의 화장문화가 보편화 된 것은 20세기 이후부터다. 19세기 때만 하더라도 일본인 역시 시신을 땅에 묻고 봉분형태로 무덤을 만드는 매장문화가 보편적이었다.

1873년에는 일본 정부가 포고령을 내려 화장을 금지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묘지난이 심각해지면서 화장 금지령은 해제됐고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화장을 적극 권장하게 됐다.

이후 일본의 화장율은 매년 높아졌다. 1940년 55.7%를 기록한 뒤 1980년에는 90%를 넘었다. 일본정부가 학교교육과 각종 캠페인을 통해 매장문화에 대한 선호의식을 바꾸고 전국의 화장장을 위생적이면서 편리하게 단장한 노력 덕분이었다.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등 조상숭배의식이 높은 일본인들이지만 화장에 대한 거부감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화장율이 높아지다 보니 화장장도 당연히 늘어났다. 현재 일본은 전국적으로 첨단시설을 갖춘 현대화된 화장장을 2000여개나 운영하고 있다.

최첨단 시설로 오염방지 사전 차단

일본의 화장장은 단순히 화장만 하는 곳이 아니다. 망자를 보내는 엄숙하고 경건한 장소이다. 내부 공간부터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설계가 잘 이뤄져 있다. 조경 역시 공원을 뺨 칠 정도다.

대기오염 방지에도 철저하다. 화장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검은 연기와 높은 굴뚝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일본의 화장장은 연소로와 재연소로에서 그을음과 재, 질소화합물 등을 다시 태운 뒤 전기집진기와 필터 등을 통해 유해물질을 다시 걸러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를 통해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줄이고 있다. 또 연료를 중유로 쓰면서 검은 연기가 굴뚝으로 나오는 화장장은 사라진지 오래다. 도시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고 오염차단시설 가동에 주력하면서 냄새와 연기문제를 잡았다.

좋지 않은 냄새, 자주 보이는 영구차 등으로 일본에서도 화장장은 주변 주민에게 달갑지 않은 시설임에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첨단 시설과 확고한 운영 방침으로 주민들의 반대를 최소화 하고 있다.

 

▲ 주민반대를 6년여의 끈질긴 설득작업 끝에 무마하고 완공된 요코하마 남부장제장.

 

요코하마 남부화장장, 끈질긴 대화로 합의점 찾아

높은 화장율에도 일본 역시 화장장이나 납골시설이 들어설 때면 주민들의 집단민원에 부딪친다. 하지만 오랜 기간 꾸준한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민원을 해결하고 있다. 

실제 요코하마시 외각에 위치한 남부장제장은 1982년 부지 확보에서부터 1991년 개관까지 10여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1982년 요코하마시가 화장장 건립을 위한 부지 확보에 나서자 화장장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인근 주민들은 1983년부터 반대운동을 펼쳤다. 당시에는 도심과 다소 떨어진 지역임에도 인근 주민들은 각종 문제를 제기하며 화장장 건립에 반대했다.

그러나 요코하마 시당국은 이 화장장 건립과 관련해 주민자치회와 긴밀한 대화를 이어갔다. 요코하마 시당국은 탈취, 집진기 등 최첨단 설비와 함께 대리석 바닥, 자연채광 등 호텔을 연상하는 고급 마감재, 쾌적한 주변 공원조성 등을 약속하며 끈질긴 협의를 계속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주민들도 요코하마시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요코하마시가 화장장을 운영하면서 대기오염 기준치를 철저히 준시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보고회를 열라고 요구했다. 또 영구차의 이동경로를 변경해 화장장 인근주민들의 주택가를 우회하도록 요청했다. 이와 함께 화장장이 보이지 않도록 거대한 인공산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6년여의 지리 한 설득작업 끝에 요코하마 남부장제장은 1989년 7월 착공할 수 있었다. 특히 화장장 인근 주민들이 요코하마시와의 협상에 "내 뒷마당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된다"라는 식의 반대를 위한 반대만 고집하지 않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것도 남부장제장 설립의 주된 성공 요인이 됐다.

이에 요코하마 시당국은 남부장제장 건립에 협조한 시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시민에 한해 10배에 가까운 할인혜택을 주고, 화장장 운영도 복지회에 위탁해 저소득주민들에게 고용혜택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요코하마 남부장제장은 주택가와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깨끗한 시설과 숲에 둘러쌓인 한적한 휴양시설을 연상케 한다.

 

▲ 요코하마 시 공무원, 남부장제장 운영진의 모습.

 

주택가 위치한 장제장, 지역주민은 무덤덤

일본의 화장장이 인적이 드문 외각에만 위치한 것은 아니다. 도쿄 시부야구 니시하라에 있는 요요하타 장제장은 주택가에 있다. 또 토다 장제장 역시 인근 초등학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단정하고 깨끗하며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토다 장제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장제장이다. 나카야마 히토시 토다 장제장 사장은 "화장요금은 다소 차이가 있다"면서 "화장로의 경우 특빈실, 특별실, 최상등 등 3종류로 운영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주택가는 물론 수변공원과도 인접한 토다 장제장은 냄새도 없고 연기도 거의 나지 않는다. 오염차단시설 설치 및 가동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들도 화장장 운영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운영돼 온 곳이다보니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새였다.

토다 장제장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다카하시 쥰꼬씨(여·62)는 "이곳에서 20년 동안 살았는데 냄새도 없고 깨끗하게 운영돼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수변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토다 장제장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