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23일, 개봉예정인 영화 '어벤져스2'는 서울에서의 촬영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지난 주말 주연배우들이 참여한 레드카펫 행사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전예매도 이미 50만명에 육박하며 예매율 95%로 뚜껑도 열기 전에 극장가를 집어 삼킬 기세다.

이런 광풍 속에 4월 9일 개봉 이후, 예매율 20위를 넘어 누적관객 2만명이 채 안되는 처참한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는 불행의 명작이 있다. 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가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1984년 개봉했으니 거의 30년만에 재개봉하는 셈인데, 원래 감독판 러닝타임이 7시간 이상되는 대작인데 개봉당시에는 미국에서 2시간 남짓, 한국에선 104분 정도로 줄여 상영했다. 판소리로 비유하자면 완창을 요약판본으로 줄인 것인데, 그러고도 처음 주었던 감흥을 넘어 오랜 세월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재개봉에 맞추어서는 4시간에서 10분을 더 넘긴 러닝타임으로 편집되었다 하니 거의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접하는 기분으로 극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옛날 옛 적에..'시리즈물 중에 하나인 이 영화를 세르지오 레오네감독이 구상하고 만드는데는 1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앞서 개봉한'옛날 옛적 서부에서'보다 훨씬 앞서 구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레오네감독은 서부(In The West), 혁명(In The Revolution), 그리고 1920년대의 갱스터 시절(In America)을 다룬 아메리카대륙 3부작을 남겼는데 '옛날 옛적 혁명은'은 돈 많이 버는 것이 소망이던 한 좀도둑이 혁명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투사로 변해가는 멕시코의 근대사를 다루었고 1968년 개봉한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서부극의 바이블이라 해도 지나칠 게 없는 완벽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유쾌하게 비틀고 있다. 우리에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아이디어가 되어서 더 친근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대공황과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범죄 세계에서 자라난 젊은 유대계 소년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삶과 배신을 갱스터라는 거친 배경을 통해 긴 호흡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이 영화 속에 스며있는 향수어린 음악 또한 흘려들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품이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이는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엔니오 모리꼬네다.

스트라빈스키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되는 모리꼬네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식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변절해 갈 때에도 본인의 작업을 기본적으로 고수했고 대중성도 동시에 확보하는 쉽지 않은 결과를 이루어 내었다.

레오네감독과도 영화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작업들을 진행해 왔는데 '잃어버린 미국의 꿈'이 주제가 되었던 레오네감독의 영상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파트너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탈리아 출신의 레오네 감독이 만든 이런 종류의 영화를 흔히'마카로니 웨스턴'또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데 서부극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황야의 무법자'도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이다. 물론 음악은 모리꼬네가 맡았다.

실루엣 처리된 말들이 달리고 그 뒤로 총성과 휘파람이 간간히 섞인 원초적인 리듬과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는 선율은 레오네의 영화를 훨씬 맛깔나게 만들었다. 이후 '007시리즈'의 인트로도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인다.

영감을 얻는 것과 베끼는 것은 다른 얘기인데, 사실 '황야의 무법자'의 원안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다. 그래서 '황야의 무법자'를 본 구로사와감독은 "이 영화는 훌륭하지만 내 영화이다"라고 말했고 레오네감독은 결국 수입의 일부를 나누어 주는데 합의한다.

한편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 당시만 하더라도 순수음악가로 미래가 촉망 받던 때였다. '황야의 무법자' 자막에도 음악담당은 레오 니콜스라는 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후로 영화음악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현대음악계에서는 한 사람의 인재를 잃었다고 통탄했다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옛날 옛적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조)가 남긴 유명한 대사가 왜 이 시점에 생각날까? "관 세 개만 준비해 두시오" 하지만 결국 네 개가 필요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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