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봄, 분분히 떨어지는 햇살에 서둘러 마중을 나서는 꽃잎들. 그 꽃잎들 눈으로 만져보며 길을 걷는다. 온 마음 모아 봄을 일구는 꽃들의 노동 앞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인사를 건넨다.

길 가장자리 구석으로 분분 내려서 층층 쌓이는 꽃잎들이 눈에 밟혀오고 짝을 이룬 생명들이 살아 있음을 뽐내고 있다. 버스가 길 위를 달려 지나자 봄볕 껴입은 하얀 꽃잎들, 우르르 창공을 난다. 높은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을 지탱하는 주춧돌처럼 길게 뻗은 길 위  짝을 이룬 생명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가!

짝을 이룬다는 것. 새와 나무, 꽃과 나비, 사람과 반려동물, 남자와 여자, 다정한 짝들이 모두 길 위에서 잇몸 다 드러내놓고 봄을 나고 있다. 긴 잠에서 깬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음악회를 열고 초대받은 연인, 그렇지 않은 반려동물까지 그 아래 서서 정을 나눈다. 주인의 곁에서 총총 걸음 맞추며 따르는 반려견의 검은 눈망울에도 봄은 지나고 있다. 다급한 연인들의 포옹에 꽃나무 저도 무안했던지 꽃 잎 서너장 발등에 떨어뜨려 준다. 이처럼 생명을 가진 우리들의 모든 사랑이 길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길은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갈 길이 멀다, 걸어온 길, 살 길, 여정처럼 우리가 살아야 할, 나아가야 할 정도(正道)로 자주 빌려 쓴다. 길이란 글자를 자주 되뇌다 보면 참으로 정감이 가지 않는가! 도시가 발달하기 전 우리는 길에 머물 시간이 많았다. 학교를 마친 동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도 하고, 소나 염소들이 줄지어 지나가면 사람들이 비켜주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이웃끼리 인사를 주고받는 곳도, 군대 가는 옆 집 아들에게 용돈을 건네주던 곳도, 집을 뛰쳐나온 송아지를 찾아 나선 곳도 그 길이었다. 길이 인생에 비유된다 할 때 이처럼 그 때의 길 위에는 마음 편안한 사랑이 수두룩했다.

사랑,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함께 존재해야만 가능하다. 물론 애타는 짝사랑도 있겠지만. 예쁘게 짝을 이룬 생명들처럼 함께하며 말을 건네고 내 마음을 드러내도 상처받지 않고 흔들림 없는 존재, 내 안의 꽃비처럼 흐르는 감정을 서로의 눈 속에 담아 두는 일이 사랑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건 꽃이든 반려견이든 상관없이 사랑은 함께 하는 사랑이라야 좋다. 봄 길을 나선 다정한 짝들에서 비켜선 나는 길 위에서 얼마 전 사랑을 잃었다.

수년을 가족처럼 지내던 딸자식 같던 반려견이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혈되지 않는 슬픔에 얼마나 격앙했던지 치고 간 화물차를 놓치고 말았다. 봄꽃처럼 아름다운 사랑들이 편안한 길 위에서 나눠지고 있을 때, 너무 일찍 떠난 연약한 사랑 앞에 슬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절대 빨리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 나보다 더 어린 사랑이건만 같이 머물다 먼저 떠나가는 것들에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하지만 조금씩의 마음 건넴으로 길 위의 사랑을, 마음 편한 사랑이 수두룩한 길을 만들 수 있다.

반려(伴侶),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 또는 항상 가까이 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방 안에서 가족처럼 지내는 반려동물은 인간과 다른 종의 개념이 아니라 반려자(伴侶者)인 셈이다. 누구에게는 친구이고 자식이고 형제자매인 것이니 그들과의 헤어짐도 사람끼리의 이별과 무엇 다르리.

길 위에 사랑을 펼쳐보자. 한적한 공원이나 동네 사잇길뿐만 아니라 출퇴근하는 큰 길에서도 조금씩 양보하고 세심한 주의를 살피면 얼마든지 연약한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나들이 차량이 많아지고 마을로 구경나온 동물들이 변사체로 자주 보이게 된다. 그들도 함께 이룬 짝이 있는 생명이고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길 위에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핀 민들레를 발로 밟고 지나는 사람이 있는가? 도로에서 조금씩 속도를 늦추고 옆 차량은 길 위를 지나는 이웃처럼 생각하며 혹 길 위를 지나는 보살필 사랑들이 없는지 세심한 마음을 펼쳐보자. 그러면 이 봄 더 환하게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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