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망명생활을 할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개자추(介子推)는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드리며 무려 19년을 섬겼다.

훗날 중이가 진의 문공(文公)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자존심 상한 개자추는 홀어머니와 함께 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자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른다. 그러나 개자추는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만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그날 하루는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도록 한데서 한식 풍속이 생겼다.

옛날 사람들은 불씨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다. 시집 온 며느리가 불씨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꺼뜨리면 소박을 받을 정도였다. 집집마다 겨우내 사용했던 묵은 불씨를 끄고 새로운 불씨로 바꾸는 날이면 그날은 화재에 대한 위험과 불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루 동안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은 것이 한식의 유래로 보기도 한다.

≪동국세시기≫에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은 이 불을 정승·판서·문무백관과 각 고을 수령에게 나눠주는 것을 사화(賜火)라 했고, 고을 수령은 이 불을 한식날 백성에게 나누어 주게 되는데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었기 때문에 한식이 되었다고 한다.

한식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성묘를 하며 조상 무덤을 돌봤다. 특히 손 없는 날 또는 귀신이 꼼짝하지 않는 날로 여겨 산소를 손보거나 집수리를 해도 탈이 없다고 여겼다. 한식이 2월에 든 한식과 3월에 든 한식이 있는데, 2월 한식은 조상 무덤을 손봐도 좋고 농사도 풍년이지만, 3월 한식은 지역에 따라 개사초(改莎草·무덤을 손보고 잔디도 새로 입히는 일)를 하지 않았다. 올해는 2월 한식이 든 해다.

한때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절기였지만 이제는 있는 둥 마는 둥 지나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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