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일본이 만주사변(1931)을 일으켜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을 야기 시킨 역사는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음이 사실이다. 마침 아키히도(明仁) 일본왕은 올해 패전 70주년을 맞는 신년사에서 이러한 자국의 반성해야 할 역사사실을 시인하고 나섰다.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방식을 배우는 것이 지금 무척 중요하다", "전쟁에서 숨지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과 도시의 폭격으로 많은 이들이 숨진 전쟁 이었다" 등의 언급은 진주만(미국)을 일본이 선제 폭격함으로써 되돌려진 원폭 참상(인명피해만 100만명의 사상자)을 깊이 뉘우치는 양심일수 있다. 

과거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여기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식만이 국가발전의 바른 초석이 됨을 부인 못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타성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근래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자국의 군국주의 전범적 과거사에 대한 사실을 숨기며 극단적인 발언을 일삼아 왔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2013)로 태평양전쟁 전범자 추모를 과시하고 일본의 전 중의원의장 관방장관 등을 지낸 고노 담화를 희석부인하며 자국의 과오를 호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자국 교과서 수정 수용, 미국 매그힐 출판사 위안부내용 수정요구, 일본군 위안부 자료부인 등으로 일관된 국수주의 내지 군국주의적 열정은 세계인의 빈축을 살 뿐이다. 실수와 과오는 인류문화의 발전과 변화에서 필요불가분(必要不可分)의 요소일지 모른다.

다만 이럴 때 과오를 반성하고 실수를 뉘우치는 처절한 참회와 기도의 도량과 이의 실천만이 구제의 바탕이 되리라고 본다. 여기에 하나 더 예를 들면 한반도 통일에 핵 도발을 내세운다든가 여기에 주눅들어 자강의 길을 잃고 마는 진짜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향후 10년 이내에 100개의 미사일 핵포탄 보유를 내세우지만 여기에 맞설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더러는 국제 정세의 힘의 균형에 끼어보기도 하고 더러는 선린우의의 노력을 세계를 향해 다해보기도 한다.

그러고도 의심으로 남는 우리들의 허약함은 무엇인가?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이의 쌓은 진심과 노력이 무르익을 때 가능하다. 비겁한 사람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다.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남의 눈치나 볼 것이 아니다. 작은 시작이지만 진실과 단결과 신뢰를 실천하고 있을 때 끝내 희망과 결실의 편이 돼줄 것이다. 우리들은 핵의 싹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그릇된 핵을 요격 소멸하고 평화의 핵탄을 구사할 수 있는 미사일을 이미 싹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방어능력은 처음 9%의 요격 수준에 불과 했던 것을 불과 몇 년 사이에 95%까지 발휘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드(THAAD)로 지칭되는, 미국의 고도 미사일 방어의 힘이 우리나라 인근에 배치되기를 바라기만 하는 열등감에 우리의 자존적 능력이 묻혀서는 안 된다. 그 동안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하고 정제되지 못한 언행들과 우리사회의 막말로 인한 악순환의 소모적 병폐를 진정한 국력신장의 역군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구의 손을 놓고 행여나 요행과 사대주의적 발상에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한다. 우리들은 현재의 참된 생활에 온 정성을 기울여 시급한 차세대 교육 및 자주 정신 함양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민의 복지예산과 국방 안보 통일예산이 따로 없다. 오로지 바른 역사 사실 인식의 중심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 총화적 자존능력을 발휘하는 단결만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가지는 힘이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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