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인도의 삼장법사가 하루는 길을 가다 마을에 큰 법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입구에서 문지기가 삼장법사의 출입을 막고 나섰다. 어떤 법회인데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같은 사람이 들어오려 하느냐며 누더기 옷을 입고 있던 삼장법사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법사는 근처 사찰에 들러 황금빛이 나는 좋은 옷을 빌려 입고 다시 법회가 열리는 곳으로 갔다. 이번에는 문지기가 아주 공손하게 법회가 열리는 곳으로 안내했다. 옷 하나 갈아입었을 뿐인데 대접은 융숭했다. 한창 법회가 열리고 있을 즈음, 법사는 황금 빛 옷을 벗어 바닥에 가지런히 펼친 다음 옷 위에 맛있는 요리를 부어버렸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이유를 물었다. 삼장법사는 누더기 옷을 다시 입고 "내가 여기 들어 온 것은 옷 때문이지 나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옷이 음식을 먹어야 옳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문지기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살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는 다이어트와 성형, 명품 등 외모에 치중되어 있다. 보기 좋은 용모, 좋은 차, 고급주택, 높은 지위와 명성 같은 겉치레에 휘둘러진 유약한 내면이 갈수록 희미해져 간다.

겉치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이고 나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좋으니 좋은 것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날씬해지고 예뻐지려 하는 주안점은 남의 관점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한 심리의 결과다. 마치 누더기 옷을 입은 삼장법사가 문지기에게 조롱거리가 되다가 좋은 옷을 입고서는 대접을 받게 되었듯이 여기 누가 문지기의 입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큰 차를 타고 다니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하여 그 사람의 인격도 높을 것이냐, 그 사람의 가치도 상승시킬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대한민국을 들썩일 만큼 울분을 토하게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보다 정치인이나 고위관료, 재벌들이 많은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도 왜 나는 문지기와 같은 입장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가?

어느 자리에서 사람을 바라 볼 것인가, 평가할 것인가 하는 가치와 입장 때문이다. 인간은 가치선택적 존재이기에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인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얼마 전 거제에서 사채 빚 때문에 일가족의 안타까운 죽음도 가장의 잘못된 가치 선택 때문이다.

간통죄가 없어졌다고 아무 옆 사람과 사랑을 해도 된다는 가치가 옳은 것은 아니질 않은가. 돈·사랑·권력·명예·실리 등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것에서 그 핵심을 올바르게 선택했을 때 인생은 봄처럼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 핵심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말엽적인 인생들이 많다.

공자는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이 지혜라고 했다. 이런 시비지심이 지혜의 단초임은 분명하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근본적이고 말이어야 하는지 선후본말(先後本末)의 판단이 아쉬운 세상이다.

사실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이미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자 환경과 기질의 차이에 따라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순간적으로는 외면이 편안할 때가 있겠지만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잘못된 가치 판단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없어졌으면 한다.

봄이다. 봄이 되면 누구나 부푼 마음 한 둘 가지게 마련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다가오는 봄에 뭔가 따뜻한 일, 좋은 인연에 대한 기대를 한다. 겨울동안 눅눅하고 웅크러진 마음을 풀어주고 마음 평안한 기대를 누구보다 빨리 만날 수 있는 남쪽바다, 거제에 살고 있다는 사실로도 좋은 가치로 여겨 행복했으면 한다. 오늘은 어느 자리에 서서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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