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지 경남광역자활센터장

▲ 황광지 경남광역자활센터장
강 시인의 시를 두어 행 읽었더니, 그만 동화되어 내가 설렘에 빠져버렸다.  다정다감한 시인의 품성이 물씬 밴 시 '다솔사 입구에서'였다.

'이미 당도해 있을지 모르겠다/만해 이후 만해 같은 시인이'

시인을 잘 알고있는 나는 조곤조곤하면서 열정적으로 느껴지는 그 말투와 표정과 몸동작이 바로 떠올랐다. 다솔사 입구에 들어서면서 그리워, 그리던 사람들을 짚어보는 그 심정이 내 심정이 되었다. 곧 얼싸안을 광경을 들떠 그려보는 조바심이 나에게서 나왔다. 시인은 어깨를 겨루면서도 다른 문우를 큰 자리에 올려놓는 아량을 서슴지 않았다.

'동리 이후 동리 같은 작가가/염불로 돌계단을 오르고 대양루를 지났을까'

마치 내가 동인들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기분이 부풀어 올랐다. 가볍다. 일상을 툴툴 털고 나들이를 간다. 오래 만나지 못했던 문우들의 궁금한 안부를 안고 소풍을 간다. 시인은 교류하는 문우들에 대한 찬사를 뇌고, 그들의 행보를 짐작하다보니 마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가 보았다.

'본전에 올라 합장한 뒤/곧바로 요사체로 가서 스님이 묵었던 방/쓸고 있을까'

동인들을 만날 때면 내 발걸음도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흐트러진다. 삼십 년 가까이 이어지는 인연이 곰삭아, 매월 만나는 그 간격이 멀게 느껴지고 그 시간이 소중해서 요사체로 찾아들 듯 길을 재촉한다. 누가 와 있을까?

'아니면 작가가 지냈던 방 들어 소설 한 대목/떠올리며/캐릭터처럼 헛웃음 웃고 있을까'

나는 다솔사로 오르는 계단을 밟듯 시의 행간을 산들산들 따라갔다. 시인이 만나게 될 다른 문인들을 건성건성 추리해보았다. 그 건성건성 사이로 대번에 내 동인들이 들어와 웃고 있었다. 한다하는 시인의 동료들은 사라지고 정다운 가향 동인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당도해 있을지 모르겠다/범보 이후 범보 같은 정신이'

과연 나는 함께 글 쓰며 정서와 삶을 나누는 동인들을 이처럼 끌어올려 놓은 적이 있는가. 존중한 적이 있는가. 뻗어나가게 물길을 열어준 적은 있는가. 만해나 동리, 범보(범부)에 올리는 처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냥 반가운 사람으로만 싸 두지는 않았는가. 시인은 자신이 만날 문인들을 예우함으로써 스스로도 그 첫째 자리 부류에 오름을 헤아린 것일 게다. 

'오던 길의 먼지 털어낸 뒤 다도무문/차 한 잔 하고 있을까'

다도무문(茶道無門). 우선 차 한 잔 하실까요? 만남의 처음은 차 한 잔으로 시작된다. 몸도 마음도 풀리는 차 한 잔이다. 녹차를 우려도 좋고, 커피를 내려도 좋다. 아무런 허물없이, 차를 나누는 사람도 잔을 받는 사람도 행복이다.

'다솔이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당도해 있을지 모르겠다'

식솔(食率) 많았던 다솔(多率)사에서의 회합이니 많은 정다운 지인들이 당도하리라 기대를 걸어보는 시인. 그의 자그마한 신장이 보폭을 키우고 허둥대는 상상을 하며 나는 덩달아 즐겁다.

'절간에서 절간을 뛰어넘은 시대, 시대의 멀미까지/따라와/당도해 있을지'

이제 곧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가슴 저린 그리움을 비우고비우고, 시대의 멀미로 고뇌하는 밤을 지셀 것이다. 만해, 동리, 범부와도 겨룰 문학이나 정신이 오르내릴 밤. 효당스님이 썼다는 현판 '茶道無門'으로 찻잔을 기울이며 깊어가는 절간. 나도 약속을 따라 당도할 동인들을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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