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돈물/거제대학 교수

집을 짓고 이사했다. 뜰에는 잔디를 심고, 조경의 기틀은 종려나무에게 맡기어 이국정취를 풍기게 했다.

그 틈새로 여기저기 과실수를 꽂고 여유를 즐긴다. 전에부터 생각한 고향의 진달래와 할미꽃도 구해 심고 나니 감회가 남다르다.

고향에서 캐어온 것들에는 그곳의 흙이 붙어 있어 그냥 진달래와 할미꽃이 아니다. 내 고향 흙을 끌어안고 있으니 단순히 식물로 멈추질 않는다.

고향의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고향의 야생화를 하나씩 옮겨와 조그마한 망향의 동산이라도 만들고 싶다.

뜰의 여유를 모두 식물로 채우기도 뭣하고, 더러는 살아 움직이는 기분을 돋우기 위해 개의 짖음도 동원하고자 모퉁이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했다.

아담하게 만든 개집의 지붕에는 내 집에서 남은 재료까지 얹어서 제법 그럴싸하다. 정원의 푸름 속에 끼어든 이것은 보기에도 잘 어울린다. 마침 길을 지나다가 들른 제자가 정분으로 자기 집 개를 한 마리 내 집 식구로 넘겨주었다.

그 제자는 집에서 여러 마리의 다양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 사냥개로 제법 족보 있는 개라며 넘겨준 것은 기골이 뚜렷하니 의젓해 보였다. 털빛에서도 윤기가 돌고 귀공자 타입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개의 품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개였다.

낯선 사람이 오면, 알려주는 개이면 된다는 내 사고가 귀담아 듣지 않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냥이나 다닐 한가한 주인을 만난 것도 아니니, 집이나 지켜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사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벌써 개집의 주인이 바뀌었다. 족보를 내걸고 오신 견공께서는 금시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자신의 그 웅장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와도 짖기는커녕 배만 깔고 낮잠만 자는 것이다.

더러는 빈 공간의 정적을 무너뜨리는 큰 울음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소망사항이지 견공에게는 무관한 일이었다. 먹성은 좋아서 그릇에 먹이가 남아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정말 상전이었다. 먹이가 없으면 역부로 밥을 해서 갖다 바쳐야 하고, 수시로 내어놓는 것은 보기에 흉하여 치워드려야 한다. 매일 배나 깔고 주무시는 견공의 시중에 지친 나는 결국에는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나의 포기는 인내의 부족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날로 비대해가는 견공께서 짖지도 않으니, 오는 사람마다 복날을 헤아리며 된장이나 바르자며 침을 흘리니 더 이상 내 곁에 두고 모실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견공은 직무유기였다. 낯선 사람이 오면 짖으라고 모셔왔는데, 한 번도 짖지 않은 죄로 쫓겨 가고 말았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조그마한 영국산 비글이 개집의 주인으로 와 있었다.
쫓겨난 이유를 들은 제자는 가장 잘 짖는 놈으로 하나 골라다 놓았다. 그 소리도 제 체구에 비해 우렁찼다.

집안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우리의 무료함을 깨워주기도 했다. 외모야 먼저 다녀가신 견공에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울음소리를 들려주니 다행이다.

집안이 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커다란 공간에 아내와 단 둘이 있으려니 무료하기 그지없었는데, 개 짖는 소리가 이따금 정적을 깨어 주어 좋았다.

개의 짖음으로 누가 왔나 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아무도 없었다. 왜 그리 짖었느냐고 옆에 가서 동정을 살펴도 알 수가 없었다. 쓰다듬어 주면 꼬리를 치며 애교만 떨 뿐이다.

그런데 짖은 이유는 엉뚱한 데서 드러났다. 고양이었다. 자연석을 쌓아놓은 틈에 숨어 있던 고양이가 기어 나와 줄행랑을 놓는 것이었다. 개는 고양이에게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짖어댔다.

한 번은 서재에 있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보니, 녀석은 엉뚱하게도 집 앞 들판을 향해 짖고 있었다.

들판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섭게 짖어대는 모습이 하도 진지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찾아보니, 들판에서 까치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까치 때문이었다.

“이 집 개는 왜 이리 순해?”

문을 밀치고 들어선 사람은 오래 전부터 이사한 내 집을 한 번 방문하겠다던 친구였다.

“아니, 개가 안 짖었어?”

그러고 보니, 이 개는 사람을 보고는 짖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낯선 사람이 오면 짖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으로 인하여 짖은 적이 없었다. 오직 고양이나 까치가 나타나면 짖었던 것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신비스러운 달빛 속에서 개는 방문객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동네의 개가 찾아오자 조용히 그를 맞아들여 뭔가를 속삭였다.

그 동작은 너무도 유연했다. 그동안 늘 해 오던 일을 순리에 따라 하는 듯이 보였다. 서로 몸에 스킨쉽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이곳에 온 지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제 무리를 경계하지 않고 맞아들이는 개를 보면서 나의 높은 성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제 무리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은 사람뿐이 아닐까. 대부분의 동물들이 제 무리를 만나면 감정을 섞기에 여념이 없을 때에 우리 인간만이 성을 쌓아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성 안에서 안주하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으려했던 것 같다.

왜 나는 사람이 사는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살면서 사람의 접근을 개가 막아주기를 소망했을까. 느닷없이 손에 잡히는 인간의 이기가 나를 당혹하게 한다. 제 무리가 접근해 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이 없었을 텐데, 인간은 그것을 오히려 차단하려는 욕망을 갖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모든 것은 제 나름의 가치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제 나름의 생각에 따라 중요도에 차별을 둔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행동한다. 개를 통해 사람의 접근을 막으려한 것은 그 만큼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그림자가 컸기 때문이리라. 이 아침의 짙은 안개는 언제쯤에나 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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