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진과의 만남
윤호진과의 만남
  • 거제신문
  • 승인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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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설명절을 며칠 앞두고 반가운 손님이 찾아 왔다. 지역에 있는 문화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스터디에서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자로 유명한 윤호진선생을 초청한 것이다. 요즘은 안중근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 그의 발걸음이 여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993년, 뮤지컬 전문 프로덕션회사인 에이콤을 설립해 우리에게 문화산업으로서의 뮤지컬의 가능성과 성공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공연예술계의 신화인 그와의 대화는 여러 가지로 유익했다. 단순한 성공스토리야 그동안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지만 그 이면에 있는 그의 철학이나 가치에 대해 알게 되고 공감하게 되어 더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연극에 빠져 실험극장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고 연극 '아일랜드', '신의 아그네스' 등을 통해 70~80년대 연극을 대중의 공간으로 이끌어 내었다. 이미 흥행가로서의 면모는 그때 보여진 것이라 여겨진다.

1982년 영국에 단기연수를 가서 본 런던에서의 '캣츠' 관람은 그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좁고 어두운 소극장에서의 작업에만 익숙했던 그에게 런던의 뮤지컬은 그 스케일과 작품성 그리고 상품성에 있어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 자극을 고스란히 안고 한국에서의 뮤지컬의 가능성을 예견한 그는 1984년 미국 NYU로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 후, 에이콤을 통해 '겨울 나그네', '명성황후', '둘리', '몽유도원도', '영웅' 등 대형 창작뮤지컬을 주로 선보이며 창작뮤지컬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그 중에서도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자존심, 국민 뮤지컬, 최고의 문화상품, 아시아 최초의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진출작, 대형 창작뮤지컬 최초의 100만 관객, 1000회 공연 돌파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1995년, 초연 이후 무대에 오를 때마다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성장해 온 '명성황후'는 조선의 스물다섯 번째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였던 명성황후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다. '명성황후'는 이전까지 '시아버지에게 대든 못된 며느리', '사치와 권력욕에 눈먼 왕비', '집안을 망하게 한 암탉' 등 역사 속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민비'를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로 떠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등장한 식민사관에 대한 거센 비판의 목소리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식 변화, 외환위기 등의 시대적 분위기 또한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뮤지컬로 시작된 '명성황후 신드롬'은 이후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며 장렬히 최후를 맞은 이미연의 열연이 돋보였던 KBS 대하사극으로, 조수미가 노래한 '나 가거든'의 뮤직 비디오로, 다큐멘터리 '다시 살아오는 국모, 명성황후'로, 그리고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으로 이어지며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인 소재'를 찾는 그에게 당시 역사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던 비운의 국모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왔고 특히 '열강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일반적인 이야깃거리'라 판단한 것.

윤호진 대표는 '사람의 아들'로 친구의 인연을 맺은 소설가 이문열에게 희곡 집필을 의뢰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이문열 역시 명성황후에 대해 막연한 적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2년여에 걸친 자료 수집 과정에서 그녀가 악의적으로 왜곡됐다는 확신을 갖게 된 그들은 구한말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열강의 각축과 궁중의 권력다툼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 희곡 '여우사냥'을 완성했다.

미우라가 대원군을 끌어들여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명을 제목으로 삼은 이 작품은 명성황후를 현명함과 결단력을 갖춘 여걸,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려한 '조선의 잔다르크'로 재조명하는 데 성공했다.

뮤지컬에 있어 희곡도 중요하지만 음악은 절대적인 요소인데 그는 '레 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의 작곡자 클로드 미셀 쇤베르크를 끌어들여 화룡정점을 만들어 낸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른바 을미사변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명성황후'에 이어 안중근 서거 100주년에 맞춘 '영웅'을 역사적 공간인 하얼빈에서 공연하는 아이디어와 뚝심의 사나이 윤호진, 그는 마지막 소망으로 초등학교부터 인문학과 외국어 그리고 실습으로 특화된 일종의 대안학교의 설립을 꿈꾸고 있었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으로는 그가 꿈꾸는 미지의 작품을 성공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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