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백악관의 그린룸에는 아이작 뉴턴의 흉상이 놓인 책상에서 독서에 열중하는 인물을 묘사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데이비드 마틴의 1767년 작, 초상화 속의 인물은 다름 아닌 미국의 과학자 겸 정치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우리에게 벤자민 프랭클린은 100달러 지폐 속 주인공으로, 프랭클린 플래너의 창시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프랭클린은 무관의 제왕이다.

1706년 1월 17일에 아메리카 식민지의 보스턴에서 13남매나 되는 대가족의 일원 중 10번째로 태어났다. 아들로서는 막내여서 가업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스스로의 삶을 설계해야 했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했던 탓에 스스로 체계가 필요했고 제도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창의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벤자민은 10세 때부터 인쇄소의 견습일을 했고 사이는 원만하지는 못했지만 16살 위의 형이 운영하던 '뉴잉글랜드 커런트'라는 신문에 글을 실으며 꽤 인기가 있었는데 반정부적인 논조로 인해 일을 접고 필라델피아로 옮겨가 인쇄소를 직접 차리게 되었는데 이 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훗날 큰 인물이 되었어도 그의 유언장에는 '필라델피아의 인쇄업자 벤자민 프랭클린'이라고 적었을 만큼 인쇄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랐다. 

인쇄업으로 부와 명성을 얻은 프랭클린은 절친한 친구들을 모아 '준토'라는 사교 모임을 결성했으며, 여기서 오간 진지한 논의를 확장시켜 지역사회를 위한 도서관, 의용소방대와 대학교 등을 설립했다. 1729년에는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를 인수해서 발행인이 되었으며, 1743년에는 미국 철학회를 결성해서 당대의 지식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나아가 그는 민병대의 창설을 제안했는데, 이는 그때까지 개별 식민지로 분열돼 있었던 아메리카를 하나의 통일국가로 만들려는 큰 구상이 숨어 있었다.

번개가 전기라는 사실을 증명해서 피뢰침을 발명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를 낼 만큼 위험천만한 모험과 도전이 따랐지만 그의 실용적인 사고방식은 인류의 삶에 지대한 긍정적 발전을 도출해 낸다. 이런 그의 활약상은 유럽까지도 유명세를 떨치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금도 널리 애용되는 복초점 안경을 발명하는가 하면 악기와 로봇팔까지 그야말로 잡식성 성과를 이루어 낸다.

프랭클린은 정치적으로 본래 중도보수노선을 걸었다. 따라서 아메리카가 계속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는 것에도 거부반응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반기는 입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비호 아래 식민지를 마음대로 부리는 일부 독점세력에 대한 반감은 컸었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영국 정부에 요청했으나 관철되지 않자 오히려 독립 쪽으로 노선을 바꾸게 된 것이다. 

1753년,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식민지군이 프랑스군에 패하자 프랭클린은 식민지의 분열이 패배의 원인이라며 이승만대통령이 많이 인용했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유명한 구호를 신문에 게재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정치가 튀르고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업적을 "그는 하늘에서 번개를 훔쳤고, 군주에게서 권위를 빼앗았다"고 표현했다. 과학과 정치 뿐만 아니라 워낙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 가고 유행을 선도했으므로 그의 생애 자체가 선구자적 삶이었다.

요즘은 다양한 앱들이 많이 출시되어 좀 시들해지긴 했지만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새로운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새마음 새출발을 다짐하곤 했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이 프랭클린 플래너이다. 그는 평생을 철저한 자기관리로 일관했다. 그의 실천력은 주변을 감화시키고 변화시켰으며 대륙을 넘어 후세에 영향을 떨치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프랭클린은 평생 지켜야 할 13가지 덕목을 정해서 철저하게 준수했다.

절제·침묵·질서·결단·검약·근면·성실·정의·온건·청결·침착·순결·겸손이라는 각각의 덕목에는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결심한 것은 꼭 이행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라' 등의 구체적인 실천사항이 있고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었다. 따라서 프랭클린의 인격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런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형성됐다고도 할 수 있으며 그의 계획과 덕목은 오늘날까지도 각종 자기계발 이론의 근간으로 널리 전파되고 응용된다.

손자가 완성했다고 알려진 그의 자서전도 자기계발 지침서의 원조로 손꼽힌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 논란을 지켜보며 프랭클린의 13덕목이 새삼 달리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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