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저물고 밝아오고 또 우리가 바라는 새해가 온다.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간관계의 상실로 인해 사회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황폐해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네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네 아픔과 기쁨을 자기 아픔과 기쁨처럼 생각해주라고 하셨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우리가 가진 소중한 인연을 감사하며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인연의 창문을 닫아걸고 있으면 무명(無明)이다. 우리 인연 그 본성이 거울과 같아서 맑고 깨끗하다. 아무리 때가 많이 낀 거울이라 해도 바탕만은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은 그 본성이 푸른 하늘과 같아서 맑고 깨끗하다. 아무리 먹장구름이 두텁게 깔려있다 해도 구름 걷히고 나면 하늘은 맑고 깨끗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장막을 만들어 놓고 저 푸른 하늘을 가려놓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 어둡다고 괴롭다고 여기고 있다. 본래 우리의 마음바탕은 청정하다는 것을 잊고 산다. 부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이다.

좋은 인연을 버리는 것이 무명(無明)이다. 밝지 못하고 어둡다. 마음의 본바탕이 청정하다는 걸 모르고 번뇌 망상을 제 마음인 줄 알고 있으니 어둡다. 때가 낀 거울처럼 뿌옇다.

거울이 더러우면 이를 닦아내려 하지만, 마음의 거울만은 닦아내려 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나고 드는 온갖 상념(想念)들을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고 건건마다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내 생각·내 주장·내 견해만 애지중지하고 누가 다른 생각을 내비치거나 내 주장에 반대하면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무명이란 달리 무명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의 도리를 모르니까 무명인 것이다. 인연을 버리면 무명이 되는 것이다.

삶이 어둡고 괴로운 것은 팔자 운명 때문이 아니다. 부처님 법, 마음 법에는 본래 팔자 운명이란 없다. 없는데도 우리가 짓고 만들어서 팔자니 운명이니 이름 붙인 것이다. 마음이 어둡기 때문에 삶이 어둡고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 괴로운 것이다.  

내 생각이고 내 견해라고 하는 그 관념의 세계는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그걸 있다고 믿어 벽을 만든다. 갈수록 고정된 세계로 만들어간다. 그 때문에 세월이 흐르는 대로 벽은 더욱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우리 자리에다 벽을 쌓아놓고 그 안에 들어 앉아 이쪽 벽에 부딪히고 저쪽 벽에 이마를 박으면서 괴롭다고 아프다고 한다.

괴롭고 고통스런 나머지 왜 내 팔자는 이러냐고, 왜 내 운명은 남 같지 않느냐고 원망도 해보고 탓도 해본다. 본래 벽도 없고 문도 없으니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갇힌 사람을 구제해 줄 방법은 없다.

고정된 그 무엇이 있어야 제거해주든지 없애주든지 할 터지만 본래 없는 것이니 도와줄 길이 없는 것이다. 내 인연만 가지고 살지 말자. 스스로 장막을 걷어내면 된다.  

스스로 만든 벽이니 스스로 허물어내면 될 일이다. 또 새해라고 사주보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새해에는 무명으로 보지 말고 인연에 감사하고, 부처님 법에 감사하고, 사회에 감사하며, 무명의 새해는 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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