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논설위원

옛날에 고기를 잡아 파는 사람을 얕잡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푸줏간에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한 손님이 "야, 백정! 여기 고기 한 근만 줘!" 하고 말하자 주인은 한 근을 정확하게 내놓았다. 또 한 손님은 "박서방, 나도 고기 한 근 주시오" 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내어놓은 고기는 얼른 보아도 두 근은 되어보였다.

그러자 먼젓번 손님이 "이 사람아! 똑같이 한 근인데 저 사람 고기는 왜 많아?" 하고 따지자 "어르신께 드린 한 근은 백정이 드린 한 근이고, 저 어르신께 드린 한 근은 박 서방이 드린 한 근입니다."

모든 갑질의 시작은 반말이다. 사장은 직원에게 일일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지만 직원은 사장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대개 갑(甲)의 언어는 짧고 단순하지만 을(乙)의 언어는 길고 설명적이다. 사장은 직원에게 반말이 가능하지만, 직원은 사장에게 반말이 허용되지 않는다. 갑과 을의 차이는 바로 언어에 있다.

프랑스 니스거리의 한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값이 세 가지다. '커피 한 잔'은 7유로, '커피 한 잔 주세요'는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의 가격은 1.40유로다. 종업원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손님일수록 싸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최근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한 카페에서는 고객이 커피를 주문할 때 그냥 '아메리카노'라고 말하면 원래 가격보다 50%를 추가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이라고 말하면 제값을,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커피 값을 20% 깎아준다. 종업원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하고 주문한 뒤 하이파이브까지 하면 50%를 할인해준다. 말 한마디만 잘하면 3900원짜리 커피를 1950원에 마실 수 있다.

본래 '갑을(甲乙)'은 계약서에서처럼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나 쓰던 용어였지만, 이제는 우리사회의 강자와 약자를 지칭하는 대표적 명사가 되고 말았다. '땅콩 회항'부터 아르바이트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고 폭언을 한 '백화점 갑질 모녀'까지 갑의 언어가 갖는 공통점은 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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