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
  • 거제신문
  • 승인 200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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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위숙/계룡수필 회원

흰 거품이 청록 색 바닷물 속으로 녹아들며 빛을 발한다. 그 반사 빛 사이로 얼핏 설핏 모습을 드러내는 찌는 흐르는 조류를 타고 미끄러지듯 수면 위를 노닌다.

깐죽깐죽 찌가 멈칫하면서 스르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머리끝까지 긴장한다. 재빠른 챔질로 짜릿한 쾌감을 손끝으로 느껴진다.

사정없이 쳐 박는 놈을 제압하고자 대를 세우고 콩닥콩닥하는 가슴을 진정시켜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찬 저항에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투지를 불살라 본다. 심연의 마음 저 끝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두려움은 무엇일까. 과연 해낼 수가 있을까.

탄력의 최정점에서 드랙은 조금씩 풀려나가고 팅팅 긴장된 원줄과 초릿대가 팽팽한 곡선을 그리며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한다.

사람까지 끌고 갈 듯 한 거대한 저항으로 누구의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드랙을 조금 잠그고 힘껏 버텨본다.

일어섰다 앉았다하는 두어 번의 파이팅으로 놈은 끌려오는가 싶어도 휘이익 녀석은 최후의 힘으로 방향을 튼다.

정면으로 향한 낚싯대는 구십도 우측으로 뒤틀면서 쏜살같이 내뺀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녀석이 보기라도 했을까.

한참동안 힘겨루기를 끝낸 녀석은 깨끗하게 항복을 하고 뜰채에 순순히 담긴다. 역시 깔끔한 녀석이다. 

온 몸으로 사람 손길을 거부하던 녀석은 이내 잠잠해졌다. 바다의 귀족이라는 걸맞는 이름처럼 도도하게 누워있다.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낸 채 숨을 들쑥날쑥 거린다.

몸이 마르기전에 재빨리 머리와 등지느러미 사이에 인식표를 심는다. 순간 녀석의 통증이 내 손끝을 통해 전이된다. 그 아픔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얼른 소독약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조용히 물속으로 내려놓는다. 잠시 방향감각을 잃고 허둥거렸지만 곧 제 갈 길을 찾아 유유히 사라졌다. 먼 훗날 어디서든 나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낚싯대를 드리운다.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들을 한다. 동, 동, 동. 파도를 타고 떠다니는 찌는 언제쯤 저 깊은 바다 속으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 갈 것인가.

입질을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조마조마 하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려야 한다. 또 기다려야 한다.

나의 조바심을 당장은 들어주지 않는 고기들이지만 언젠가는 산뜻한 입질로 응답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다리면서 의연하고 느긋하게 즐기기를 나에게 주문한다.

바다에서 맞는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의 신선함, 해가 뜰 무렵 바다와 섬에 내리는 여명이 빚어내는 오묘한 빛의 조화, 이 모두를 눈에 넣고 가슴에 품고 첫 채비를 던지며 뿜어내는 숨소리.

세상의 모든 힘겨움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고 만다. 낚시를, 바다를 사랑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다.

깊은 밤, 야광찌가 잘 보이는 까닭은 어둠이 다른 모든 것을 가려버린 공간속에서 하나의 초점이 선명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고기에 끌려 달아나는 야광찌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물의 떨림, 해초의 흐느적거리는 모습, 하늘을 나는 새들까지 모두 보여 시선이 흩어지지만, 어둠속에는 하나의 점으로 빛나 보인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면 하나만 남은 빛이 그만큼 더 선명해진다. 모든 것은 그렇게 홀로일 때 더 돋보인다.

번거로운 인생살이에서 소음과 낙서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파도에 몸을 맡겨 들어앉은 빨간 찌 끝처럼 선명하게 삶의 초점을 응시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인생의 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다.
낚시꾼들 사이에 찌를 응시하는 시선은 종교적인 명상이라 생각한다. 인생이 비록 낚시 바늘에 걸려오지는 않더라도 낚시꾼은 그 모습이 곧 인생일 것이다.

그러기에 잡은 고기를 모두 놓아주거나 아예 잡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마리만 잡아도 즐겁다. 반면 많은 마릿수를 원하는 사람은 낚은 마릿수만큼 즐겁거나 슬프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잡아야 하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되는 경지라면 무소유의 기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바다로 나간다. 그저 좋아서다. 파도가 있으면 있는 대로,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나는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남아 있는 나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선순위는 바다다. 왜 바다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좋아서.’라고 답한다. 일 년 내내 바다를 그저 보기만 하고 바다에 발조차 담그지 않고 지내는 해도 있다.

또 지난 세월 곳곳의 이름난 갯바위를 찾았음에도 늘 바다가 그립다. 지난날 수없이 집을 떠나 회유하면서 하늘 한 번 제대로 쳐다볼 여유 없이 생존에 급급했다.

아니 몰입했던 것이다. 바다 속에서 세상의 모든 시름을 떨치고 부서지는 파도에 가슴을 부딪쳐 응어리 진 삶의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씻어 내린다.

그도 저도 아니다 하더라도 다만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곳이 바다이다. 내 집과 바다는 번지수가 같다.

바다는 내가 바라다보는 창가에 제일 먼저 닿는다.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변화된 얼굴로 그렇게 제자리에 서 있다.

누구는 하루 종일 바다를 보며 지내는 기분이 어떠하냐며 묻는다. 나는 그저 무심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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