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누군가 지휘자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곧 예술적 완성이라는 종착역으로 향하는 완행열차나 다름없다고 했다. 예술활동과 무관한 이들에게 시간의 흐름은 어떤 의미일까.

해를 바꾸어 가는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다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느낄 수 있을까. 완성도를 떠나 방향은 맞게 가는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타고 가고 있기나 한지, 열차는 안전한지, 대부분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잘 살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해 보고픈 마음으로 인사말도 날려보고 그 정도론 성에 차지 않아서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며 해가 바뀌는 이 시간을 몸부림치듯 새벽을 달려도 보지만 지난 삶에 대한 아쉬움이 쉬이 달래어지지 않는다.

지난 한 해, 흔한 말로 참 다사다난했다. 근데 왠지 앞으로 해를 바꾸면 더 다양하고 당혹스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마치 기록을 경신하듯 초유의 사건들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려 할 것 같은. 걱정도 팔자라고 하기엔 정말 우리는 너무 엉성하고 서로에게 무책임하게 살고 있고 또 스스로도 자기 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못미더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니, 세월호로 시작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에 부여된 과제를 그 누구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오랜 동안 서로를 민망하게 바라보게 할 듯하다.

사건사고는 숱하게 많았지만 유독 세월호가 우리 마음을 더 붙들어 메는 것은 어린 영혼들에 대한 미안함일 게다. 어리다는 것은 정말 많은 가능성의 덩어리이지 않은가.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그의 시 '무지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어린이의 몸은 신의 몸과 같다고 말했으며 생텍쥐페리는 일종의 황금 과실과도 같은 어린이는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다. 피카소는 어린이들은 모두가 예술가라고 했고 아미엘은 아이들의 존재는 이 땅에서 가장 빛나는 혜택이라 했다.

육당 최남선은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저 세상 저 사람 모다 미우나/그 중에 똑 하나 사랑하는 일 있으니/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들이/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라고 노래한 바 있다. 소파 방정환에게서 어린이는 가없는 예찬의 대상이었듯이 바슐라르는 어린이는 크게 보고 아름답게 본다고 묘사했다.

어린이의 속성을 가장 잘 담아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는 지구 바깥에서 온 어린 왕자의 독특한 시선과 행동으로 외부의 시선과 사유를 통해서 지구 안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의 억압과 의무, 경쟁적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 등 여러모로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꾸었던 순수한 꿈과는 다르게 소외된 삶을 억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프루스트가 그랬듯이 어린 왕자는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공간, 잃어버린 존재를 찾아서 진정한 인간 영혼의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어린 왕자'에서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어른의 세계, 다시 말해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삶의 실상은 어떠한가.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느 별의 검붉은 얼굴을 한 신사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은 아무도 사랑한 일도 없었고, 일상 하고 있는 일이란 덧셈뿐이다. 그리고 그는 날이면 날마다 당신처럼 '나는 중요한 일로 바쁘단 말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그리고는 그 말이 무슨 자랑인 양 뽐내기만 한다.

이 신사처럼 어른들은 늘 덧셈을 하느라 바쁘다. 덧셈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결여된 욕망의 덧셈일 수 있다. 권력·명예·재산 등을 보태려는 욕망의 덧셈 말이다.

우리는 이 덧셈에 혈안이 되었다가 이 땅의 가장 빛나는 혜택들을 잃었다. 그러고도 덧셈만 계속해댔고.

한 동안 식상해 보였던 송년 음악회의 단골손님인 빈소년합창단과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공연이 이번엔 첫사랑을 다시 만난듯 새로운 감동으로 와서 닿았다. 천상의 소리가 어린이의 소리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고 위안도 얻게 되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에도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새해에는 사랑이 충만한 덧셈, 어린 아이들이 꿈을 온전히 꿀 수 있게 애쓰는 어른들로 채워진 세상으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은 우리 삶의 연장이며 역사의 진술자가 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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