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나인 심포니의 계절이 돌아왔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고 '환희의 송가'라고 불리기도 하는 베토벤의 아홉 번째 교향곡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나인 심포니와 관련해서는 이미 일반화된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뻔한 레파토리도 그 시기만 되면 대체불가능한 콘텐츠들이 있지 않은가. 마치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연말이면 해마다 세 개의 계절공연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합창교향곡'이 그들이다. 그 중에서도 나인 심포니는 편성이나 주제의 광역성에서 인류 전체에게 던지는 스케일이 단연 급이 다른 작품이다.

그래서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나인 심포니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에는 지금껏 한국 오케스트라의 양대산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이 이 향연에 맞불을 놓으며 참여하고 있다.

또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서울시향과 같은 날인 27일 맞짱을 뜨고 있다. 경기필의 상임지휘자는 성시연이라는 여성지휘자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성시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까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정명훈과 한솥밥을 먹었기에 같은 날 맞짱을 우려스럽게 보기도 했는데, 두 공연 다 이미 매진된 지 오래다.

나인 심포니는 베토벤이 실러의 시를 보고 언젠가 이 시를 작품으로 만들어 봐야지라고 생각한 후 30여년 세월이 흐른 후에 완성되었다. 그 30여년 세월은 베토벤에겐 기나긴 투병의 시간이었고 고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베토벤은 말년에 청력을 잃었고 그 시기에 나인 심포니를 작곡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의 청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서히 그 기능을 상실해 간 것으로 보인다. 류머티스와 통풍 그리고 간질환까지, 많은 합병증을 가지고 있었던 베토벤은 삶의 질이 매우 열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도 보여지듯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베토벤은 나인 심포니의 초연시 솔리스트로 참여한 알토의 도움을 받으며 연주를 마무리하고 관객과 소통한다. 그가 고통 속에서 남긴, 당시로선 매우 이상한 어법의 이 곡이 오늘날 인류애의 상징처럼 남을 거라곤 베토벤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음악이라는 가치에 충실하던 고전시대의 어법으로는 교향곡에 합창이라는 음악 외적인 요소가 끼어드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교향곡은 음악만으로 구성되는 순수혈통을 고집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4악장에 대규모의 합창단이 등장해서 엄청나게 높은 소리와 단호할 정도의 분절음과 화성의 확산을 시도할 때에는 아마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베토벤은 이 곡을 발표하고 3년 가까이를 더 살았는데, 삶이란 게 지옥처럼 느껴질 만큼 육체적 고통 속에서 연명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베토벤의 부검 결과를 보면 귀 속에서 뼈가 자라는 이석증은 물론이고 관절을 자유롭게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형이 있었고 뇌를 덮고 있는 뼈가 두꺼워지는 병으로 만성 두통에 시달렸을 거라고 한다. 거기다 간병변으로 복수가 차서 수시로 복수를 빼내는 시술을 했다하니 당시 의술로써는 환자 입장에선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키며 완성시킨 나인 심포니는 분명히 당시로선 이단시될 요소가 다분했다. 그러나 그의 공연은 환호 속에 성공했고 지금은 송년의 세러모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고 있으니 이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고난과 극복 그리고 환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라 여겨진다. 실러는 가사에서 만백성들은 모두 형제가 되어 서로 껴안으라고 노래하고 있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나인 심포니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명확하다. 지난 세월 동안 혹시라도 오해가 있다면 풀고 반목이 있다면 이해하고 용서하는 또는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지난주 통영에서 보았다. 약간은 의기소침해 있는 그들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보여 주는 감동과 에너지는 충분히 그들다웠다.

27일 만석으로 채워진 예술의 전당에서 그들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나인 심포니가 이번엔 관객들을 넘어 지금 스스로 너무 힘든 자신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화해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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