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이용민 칼럼위원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요즘 문화예술계의 핫 이슈는 단연 서울시립교향악단 사태이다. 재단의 대표라는 분이 저지른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사무국 직원들의 집단적 반발에서 비롯된 이 사태는 우리가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 상당히 다양한 파장과 후유증을 남기리라 조심스럽게 예견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교향악단이다.

KBS교향악단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국내 음악계의 수준을 국력의 신장세만큼 견인해 오다 2005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 시 재단법인으로 독립적 운영을 시도하면서 예술감독으로 지금의 정명훈을 영입했다.

이른바 정명훈시대로 일컬어지는 지난 10여년은 이런 저런 이유로 뒷걸음친 KBS교향악단과 상대적 평가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할 만큼 절대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 받은 시기라 할 수 있다. 예전에 이웃 나라 일본의 NHK방송교향악단을 보며 언제 우리도 저런 훌륭한 오케스트라 하나 가져 볼 수 있을까 했던 것이 이제는 서울시향에게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큼 음악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아시아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일년에 2장씩 음반을 발매하는 계약을 맺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성과 중에 하나다. 2011년 미주 투어로부터 시작된 해외공연도 예전엔 꿈도 꾸지 못할 또 다른 성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급기야 올 여름엔 그 유명하다는 영국의 BBC프롬스를 비롯한 유럽의 유수한 음악축제에도 공식 초청 받고 에프터에 준하는 러브콜도 받아 내었다고 한다.

국력이나 국격을 따질 때,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가 척도가 되는 경우도 있다. 현실적으로 음악은 만국의 공통언어이고 그 중에서도 클래식이 그러하다. 심지어 오케스트라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있을 것이고 그런 나라를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거꾸로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활성화되어 있을테고 그렇다면 국가대표급 오케스트라는 좀 비약해서 표현하자면 나라의 얼굴이 되는 셈이다. 서울시향의 박대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릴 즈음 문화계에 종사하는 꽤 비중 있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문화재를 잃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공감가는 표현이다. 혹자들은 서울시향이 무슨 문화재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숭례문만 문화재가 아니다. 우리는 서울시향의 사태가 연주자들과 관계없이 본질을 떠나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칫 소실된 숭례문 터를 바라보듯 망연자실할 결과를 조만간 보게 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이 사태의 본질에 충실히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한 한 여성이 국내 최고의 그룹에 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임명되면서 그녀는 이미 10여년 전 또 다른 조명을 받은 바 있다. 그 당시엔 그녀 스스로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런 창피하고 곤혹스런 일로 유명세를 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을 것이다. 그녀를 임용하고 성장시킨 그 회사도 요즘 난처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추행이나 거친 언사는 개인의 일이니 그녀가 당연히 책임져야 될 일이지만 전혀 다른 조직에서 그녀가 이루어 낸 각각의 성공과 실패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조직문화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문화는 토양이다. 아무리 탐나는 유실수라도 토양이 맞지 않는 곳에서는 자랄 수 없다.

이번 일로 전국의 많은 문화단체들은 인사나 재정집행 등 서울시향 사태에서 불거진 잡음의 항목들과 관련하여 대대적으로 감사를 당하거나 자료요청 등을 요구 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근데 이번엔 제발 그런 뻔하고 창의력 없는 수순들은 밟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조금 전 들어가 본 서울시향 홈페이지에는 올 한 해 남아 있는 첼리스트 지안 왕과의 협연과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의 예고가 랜덤으로 돌고 있었다. 이제 개인의 일탈은 따로 그 시시비비를 가려보게 하고 우리는 공연장으로 달려가 자칫 의기소침해져 있을 연주자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대표선수이고 문화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악단이었기에.

경남FC가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는 소식과 도지사의 팀해체를 언급하는 발 빠른 대응에 문화예술체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완벽하게 살아야만 할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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