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칼럼위원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호주에 다녀 왔다. 업무의 성격상 유럽 출장이 대부분이라 호주는 첫 방문이었다. 아시아태평양아트센터연합회(AAPPAC)의 내년도 총회와 관련한 출장이었는데 이 연합체의 회장이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센터라는 공연장의 대표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사실 월드컵 예선 같은 경우에 보면 아시아존에 배정된 국가 중 가장 이질적인 팀이 호주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 오세아니아존에 있다 건너 온 탓도 있겠지만 일단 선수들의 외모가 그냥 유럽팀들처럼 백인 일색인 탓이 클 것이다.

호주 대륙에는 이미 6만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호주의 역사는 1770년 호주에 첫 발을 디딘 제임스 쿡 선장이 보타니에 영국기를 꽂고 조지 3세의 이름으로 호주 대륙을 영국의 속국으로 선포한 이후 1788년 최초의 백인 이민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호주를 점령할 당시 영국인들은 에보리진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을 오랑우탄 정도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실제 그들은 자연 상태에서 거의 동물과 다름없는 습생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 같은 인류로 대등한 상태에서 대접 받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협약도 없이 지금의 시드니항에 영국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는데 그 구성원들이 좀 독특하다.

3000여 명의 이주민 중 절반 정도가 죄수였다고 한다. 결국 호주는 영국인들의 유배지로 그 이민의 역사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을 이끌었던 함대의 사령관인 필립 총독은 영국 귀족의 이름을 따서 '시드니'라고 명명하니 이 날을 기려 1월 26일을 호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때부터 호주는 영국의 유형지로서 일종의 교도기능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후 80년간에 걸쳐 약 16만 명의 죄수가 호주로 들어와 초기 식민지개발 프로젝트의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한다.

시드니뿐만 아니라 뉴사우스웨일즈와 퀸즈랜드 등 호주 전역이 이렇게 유형지로서 개발된데 반해 남부호주 지역은 자유 정착민들에 의해 개척되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드러내진 않지만 은근한 자부심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 방문한 에들레이드 역시 남부호주에 속한 곳이라 문화적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듯 보였다.

호주는 1850년대 발견된 금광의 개발붐을 타고 이른바 골드 러쉬를 이루며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를 가져 오게 되었는데 그 중 중국인의 진출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들은 돈을 벌어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현지인들과 묘한 갈등양상을 빚었던 것 같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조직화되는 중국인들의 배금주의 같은 류의 행태는 상대적으로 백인들이 결속되는 백호주의라는 현상을 초래했다. 아예 법률로 만들어 백인 외의 인종은 호주 이민을 금지시키는 법을 만들었고 1973년 전 세계인들의 비난으로 철폐될 때까지 20세기의 대부분을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의 백인나라는 나름의 번영을 이뤄냈다.

물론 우리나라도 백호주의 철폐 이후 이주가 시작되었고 현재 약 5만 명 가량의 이주민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만난 에들레이드 페스티벌 센터의 대표 더글라스는 홍콩 출신의 중국계 인사였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공연장 연합체의 수장으로 선출된 만큼 카리스마와 따뜻함이 겸비된 인물이었다. 그들이 사는 공간의 이주의 역사를 듣고 내년도 총회와 관련한 협의를 하던 중 벽에 걸린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흑백 사진 속의 인물은 온화한 표정의 백인이었는데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스토리가 재미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소년합창단이 2차 세계대전 직전 호주로 투어공연을 왔다고 한다. 투어 도중 전쟁이 발발했고 공연단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국제 미아가 된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막막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 투어에 참여했던 단원 중 한 명은 훗날 호주 합창계의 대부가 돠어서 코알라와 캥거루로 상징되는 원시적 국가에 문화의 뿌리를 굳건히 내렸다 하니 그가 바로 사진 속의 주인공 비숍이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주변에 많은 이주민들을 보게 된다. 오고 가는 새로운 인연 속에서도 누군가는 역사를 만들고 누군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글로벌 도시에 사는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든 또 다른 비숍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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