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면 너른 밭에서 여름 견디며 무농약 공법으로 건강하게 자라
정성스런 손길에다 황토방 찜질까지 받으며 천연 조미료로 재탄생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동부면 너른 밭이다. 알차게 속을 채우느라 여름 내내 뜨거운 볕을 견뎌야 했고 농약을 쳐주지 않는 주인아저씨 때문에 꼬여드는 벌레들의 괴롭힘을 이겨내야  했다.

무농약 인증을 받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며칠 전 친구 몇 놈이 어디론가 끌려가는가 싶더니 농약 불검출이란 상을 받아왔다. 그 덕을 그동안 함께 해준 동료들과 고집스레 친환경을 고수했던 주인에게 돌리며 겸손을 떤다.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단련시켰던 한여름은 지나가고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때 이른 서리에 혹여 우리들이 얼지나 않을까 걱정됐던지 사람들은 서둘러 낡은 외투를 벗기고 우리를 한데 모아 창고로 옮긴다. 겨울맞이가 시작되려나 보다. 정월 첫 말(馬)날에 장을 담궈야 좋다는 말에 서둘러 우리를 메주로 만드느라 사람들이 더 바쁘다. 하루가 꼬박 걸리는 일이라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단다.

딱딱한 몸을 찬물에 담가 12시간 몸을 불리고 다시 뜨거운 가마솥으로 들어가 6시간을 견뎌야 드디어 메주로 변신할 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뜨거운 솥에서 갓 쪄 나온 우리들을 보며 사람들은 손으로 꼬집어보고 입에 넣어 혀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딱이다"며 그제서야 합격 신호를 보낸다.

이제 돌돌 돌아가는 분쇄기를 통과해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잘 다져진 우리들은 하나로 뭉쳐진다. '메주처럼 못 생겼다'는 말을 듣게 하기 싫으셨던지 아주머니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몇 차례 훑고 지나갔다.

쿵쿵콩콩. 만져주면 주는대로 제법 꼴이 난다.

그렇게 잘 뭉쳐진 우리는 온몸에 남아있는 물기를 털어내느라 건조실로 들어간다. 하루정도 서늘하게 말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35도 따뜻한 황토방 찜질이다. 추울까봐 친절히 짚도 덮어주신다. 4일 정도 지나니 몸에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흰색·푸른색·누런색 곰팡이란 놈들이 버짐처럼 온몸에 퍼진다. '이게 뭐지?' 그때 짚을 들춰보던 주인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신다. 아무래도 내가 좀 예쁜가 보다.

"아이고, 메주가 잘 띄워졌네"

나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다. 온몸에 퍼진 곰팡이로 퀴퀴한 냄새로 부끄러웠던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차갑게 때론 뜨겁게, 여러 번의 담금질이 끝나야 비로소 나는 메주가 된다. 그것도 무농약 인증까지 받은 구수하고 영양 가득한 자랑스러운 전통메주.

공장에서 예쁘게 찍혀 나오는 다른 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성스런 손길 하나하나 몸에 아로새겨 있는 우리는 특별하다. 나는 이제 된장으로, 간장으로, 고추장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냄새 나서 꺼려하던 사람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천연의 조미료로 사랑받게 될 날을, 못생겨도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명품 메주를 알아줄 날이 오기를, 고집스레 전통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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