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이 악단이 부천시의 이미지를 고양하고 예술 도시로서의 입지를 강화함과 동시에 부천시민들의 음악적 정서 함양에 이바지하기 위해 1988년 창단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대개의 경우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 고양'이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띈다.

당시 부천은 다른 수도권의 신흥도시들이 그러했듯이 특화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며 시세를 키워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1986년 뜻하지 않은 악재를 만났는데 바로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며 한 동안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부천서 권양 성고문 사건'이 그것이다.

언론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부천이라는 도시이름을 사건 앞에 꼬박꼬박 붙여 줘서였던지 부천의 도시 이미지는 거의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진 듯 했다. 그런 부천이 긴 불명예의 터널을 벗어나는 데에는 의외의 카드인 문화마케팅이 주효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바로 사건발생 2년 후 창단한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성공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1997년 상업영화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며 탄생한 부천판타스틱영화제도 큰 역할을 했지만 그 꾸준함이나 일상적 기여에서 보면 부천필의 공헌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같은 수도권의 화성이 연쇄살인이라는 미제의 사건으로 아직까지 도시 이미지 회복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부천의 문화마케팅 전략은 상당히 성공했다고 평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화성도 한 때 국민가수 조용필의 고향임을 내세워 도시 이미지 재건을 위한 기획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잊을 만하면 사건이 재발하고 심지어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마저 만들어져 히트까지 하는 상황이 되니 어느 순간 손을 놓고 하늘을 원망하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지난 10월 3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코리안 심포니의 공연이 열렸다. 코리안 심포니의 평소 연주력이 나쁘진 않지만 먼 길까지 달려가 볼만큼 대단한 오케스트라라고 여기진 않았는데 이번엔 단 걸음에 먼 길을 마다 않고 공연장을 찾았다. 새로 부임한 지휘자 임헌정이 만든 코리안 심포니의 새로운 모습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슈투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메인 프로그램이었는데 정갈한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표현에 더해지는 세기는 이 곡이 가지는 대중성과 그에 대비되는 파격적인 음악적 진행만큼이나 대단하게 다가왔다.

마치 배기량 큰 고급차의 뒷좌석에서 베스트 드라이버의 안정된 운전 서비스를 받는 기분이랄까. 바로 이 날의 주인공 임헌정이 25년여 전,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맡아서 지금껏 성장시킨 인물이다.

1998년부터 2003년에 걸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교향악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고 연이어 보여 준 브루크너 같은 신선도 넘치고 도전하는 프로그램의 기획들은 때마다 언론과 애호가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임헌정의 부천에서의 25년은 부천시의 이미지 회복의 시간이었고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기획이었다고 생각된다.

공연 다음날 다른 일로 부천시 의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청사 건물 외벽에 크게 랩핑되어 있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이미지는 부천 시민들이 이 악단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이어진 관계자와의 식사 시간에 들은 농담같은 얘기는 거의 피니시 블로우가 돼줬는데, 부천에서 키운 국내 최고의 지휘자 임헌정이 코리안 심포니로 옮겨 가는데 어찌 아무 대가도 없을 수 있느냐라는 애교 섞인 불만이었다.

쉽게 얘기해서 메이저리그 같은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최고의 성적을 내고 이적을 하게 되면 원 구단에 선수 몸값으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는데 임헌정의 경우 아무런 이적료 없이 코리안 심포니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본위의 재미있는 설명에 크게 웃고 말았지만 그들은 사반세기를 함께하며 우울하고 야만스러운 도시 이미지를 문화적 완성도가 높은 도시로 바꿔준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또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듯 했다. 현대사회에서 도시의 이미지는 문화적으로 구축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처럼 역사를 거슬러 봐도 문화예술인을 존중하는 경험이 일천한 경우 더더욱 이런 사례는 아무 도시에서나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의 문화적 성숙도가 도시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음을 시민들은 직시해야 한다. 캠페인으로 될 일이 아니다. 공부를 해야한다. 우리가 급할 때 잘한다는 과외공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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