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래 - 천명관 作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면 보통 책이 빽빽이 차 있는 책장 앞에 서서 제목을 찬찬히 읽어본다. 그날 내가 제목을 읽고 있을 때 나를 당긴 것은 고래였고 마침내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고래는 나를 집어삼켰다.

책을 읽고 난 내 가슴 속을 덮친 것은 나는 과연 무엇을 읽은 것이며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리고 내용을 이해하기에 나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과 함께 찾아드는 후회.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기분으로 잘 접근하지 않던 책 끝을 펼치고 비평의 글들과 작가의 인터뷰를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비평을 빌려 정의 내려보자면 고래는 최고의 영화였고 모든 장르를 가진 새로운 장르였으며 우리가 고정시켜온 소설의 또 다른 공간을 아낌없이 넘나드는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히 글임에도 불구하고 노파와 금복과 춘희가 어딘가에 존재했었을 것만 같다는 생각 속에 빠져있다.

정말로 그랬다. 뭔가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머릿속이 책을 그려내고 있었다. 책의 끝에서 점보와 춘희가 우주 저 멀리로 사라지는 순간이 되어 하늘 위에서 지난 일들을 내려다봤고, 금복이 칼자국을 작살로 찌르는 순간을 보고 듣고 느꼈다.

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책 속에 빠져있든 간에 정리되지 않은 것은 정리되지 않은 것이었고 여전히 혼란스러우며 심지어 정리자체를 포기한 상태에 가깝다. 나의 개념을 한 순간 잊고 책의 속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내가 계속 직면하는 혼란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단순히 나이에 떠맡길 혼란인건지 받아들여지지 않을 아집인건지 또한 헷갈린다.

이렇게 목까지 차오르는 모든 것들은 언제쯤 잔잔해질까 고민해 보면 시간이 흘러 고래를 생각할 때면 가슴은 먹먹해지고 목 끝까지 감정이 차오를 것 같다.

다만 시간이라는 이름하에 점차 내 속에 녹아들어 언젠가는 이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기를 원할 뿐이다. 그리하여 내 앞의 고래를 알아보기를, 그리고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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