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2011년 가을이었다. 통영에 살고있던 A씨는 중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의 진로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외가 모두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의 교육시스템에 아쉬움이 많았던 터였기 때문이다.

숙고를 거듭하고 있던 중 거제에 있는 계룡중학교가 음악예술중점학교에 선정돼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됐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취미로 배운 드럼에 아들은 제법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그런 아들이 계룡중학교에 진학하면 평면적인 교육과정보다는 좀 더 특화된 커리큘럼 속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 보았다.

한편으론 자칫 체계가 서지 않은 새로운 제도에 아이를 맡겼다가 공부도 놓치고 기대하는 전인적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 같은 것도 당연히 있었다. 여기저기 자문도 구하고 학교에 가서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잘 운영해 보겠다는 의지도 확인한 후에 원서를 접수했다. 입학정원은 1학급에 해당하는 30명이었는데 31명이 지원했고 별탈없이 입학허가를 받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3년을 통영에서 거제로 통학을 시키자니 중학생에겐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됐고 A씨 내외는 통영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학교와 가까운 상동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선 농반진반으로 신 맹모삼천지교라고 이들 내외를 다소 극성인양 표현하기도 했지만 인생 100세 시대를 넘어설 아들 세대에겐 지금과는 좀 다른 가치와 생활양태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았고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문화적 소양이라 여겨졌기에 보기에 따라선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아들은 그 사이 3학년이 되었고 요즘 자녀를 둔 가정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병도 크게 앓지 않고 본인이 좋아하는 타악기를 배우고, 친구들과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면서 나중에 좋은 음악선생님이 되어 볼까하는 마음에 작곡 공부까지 병행하는, 학교 교육과정의 혜택을 고루 받았다. 이제 곧 고등학교 진학을 목전에 두고 예술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에겐 12월 초 정기공연을 앞두고 일과 중 틈틈이 발표준비를 같이 하고 있는 동기들과 후배들이 있다. 듣자하니 동기 중에서 10여명이 음악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나름대로 준비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와중에 걱정도 생긴 모양인데, 내년까지는 후배를 뽑아 두었는데 후 내년엔 모집계획이 없다면서 나중에 모교를 방문해도 음악반 후배들을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MB정부 때 정책적으로 장려된 이른바 '한국형 엘 시스테마'는 당시에도 그 취지가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우려를 낳았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연관 사업들을 쏟아 내는 것이 너무 속도전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씨를 뿌리고 이제 제법 싹을 보는 세월에 접어들고 보니 역시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이나 결정이 모호하다.

한국형 엘시스테마 사업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아르떼)에서는 체험형과 교육형 그리고 관람형 등 유형을 나눠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교육 기관까지 아우르며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평생교육의 계획과 현장 적용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거제에는 예술중점학교에 음악분야로 계룡중학교가 지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창호초등학교와 성포중학교가 예술꽃 씨앗학교로 선정돼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소규모 학교에 예술의 씨앗을 뿌려 학생과 지역을 모두 문화적으로 변모융성시켜 나가겠다는 포부이다.

이런 좋은 취지의 사업을 누가 부당하다 하겠는가. 다만 '한국형 엘 시스테마'사업의 전제가 기본적으로 한시적 지원이라는 한계를 가진 채 출발했다면 더더욱 지원기간 이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훨씬 책임있는 자세로 접근했어야 했다.

아르떼의 사업 방향이 전국에 프랜차이즈를 개설하듯이 양적 팽창에 대한 강박만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기존의 가맹점이 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지역사회도 여기에 주목해야 하고 화답해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 지역에 뿌린 씨앗이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는데 모른 척 해서는 되겠는가.

'작은 학교에 찾아 온 아름다운 기적'이 우리 모두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본인들의 슬로건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르떼는 교육지원청과 시청을 방문해서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지역이 담당해야 할 성과와 부담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소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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