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10월 중순쯤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이라 한다. 마음 바쁜 이들은 서둘러 다소 설익은 단풍을 맞이하러 산을 오르는 모양인데 기대를 잔뜩 안고 오른 산행의 끝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명산이라는 곳이 가는 곳마다 온갖 낙서와 파손으로 얼룩져 있어 입산객들의 맘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큰 바위나 나무같은 경우 거의 예외없이 색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거나 심지어 공구를 이용해서 글귀를 파 놓았다 하니 복구도 쉽지않은 심각한 상황이라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이같은 자연훼손은 뿌리 깊은 구복신앙과 민간신앙에 기반한 종교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니 이들이 가지는 의식의 흐름이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사회는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대체로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교통을 이용할 때도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내용과 볼륨에 불쾌하거나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몰지각한 행동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필수적인 소통공간인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오히려 폭력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으니 인격살인의 위중한 상황까지도 이제는 무신경해지다 못해 일반화돼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기는 극장이나 공연장 같은 집단관람시설에서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영화가 상영되거나 공연이 진행되는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감정선이나 몰입의 과정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전혀 탑재되어 있지 않는 관객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핸드폰 벨소리를 전혀 관리하지 않거나 심지어 뛰어다니다시피 자리이동을 격하게 또는 빈번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은 국내 최고의 합창지휘자로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는 윤학원 선생이 대우합창단을 창단하고 공연을 할 때였다. 예나 지금이나 클래식 인구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객석을 채우는 일에는 학생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에도 일부의 성인 관객을 제외하곤 대부분 학생관객으로 공연이 시작됐다.

객석의 학생들은 무대 위의 퍼포먼스에는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시종일관 합창단 소리를 능가하는 소음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지휘자 윤학원 선생은 연주를 중단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급기야 공연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 날의 사건은 공연에 대한 학생들의 무지나 교육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연주자들과 공연에 집중하고자 하는 관객 모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부족한데 기인했을 것이다.

영화 '명량'이 18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고 전국의 공연장들이 평균 60퍼센트 이상의 가동률을 보이는 적극적 문화향유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도 예의와 배려를 잃은 일부 사람들로 인해 오랜만에 가지는 삶의 여유와 힐링의 기회를 무참히 날리기 일쑤다.

비싼 가격을 치르고 감정의 정화를 완성해 가는 무렵에 터지는 생뚱맞은 전화착신음은 연주자와 관객 모두를 좌절하게 하는 대단한 폭력이다.

바위에 낙서하는 사람이나 다중 앞에서 목소리 큰 사람 그리고 공연장에서 부주의한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같이 즐기거나 안락해야 할 공간에 대한 개념이 부재하거나 타인의 소중한 감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데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행동에 대해 질타하거나 책임을 묻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예의나 배려부족이 비록 법률적 처벌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행위가 매우 반사회적 행동임을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좀 더 깊이 있게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때 각 공연장에서 시행했던 공연장 내 전파차단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규정한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문화향유의 공간에서 타인의 고의나 실수로 인한 행복추구와 문화향유 침해 및 박탈이라는 국민의 기본권리와 최소한 다투어 볼 여지는 있다고 본다.

가을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더 이상 목소리 큰 사람들의 세상이 아닌 나지막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대접받는 품격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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