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진 칼럼위원

한동안 잊을 만하면 다시 국민들의 심사를 긁는 것이 노대통령의 부적절한 언사(言辭)다.

최근 노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이종석 통일부장관의 ‘북한 미사일정책에서 가장 실패한 나라는 미국이다’라는 말을 두둔하면서 ‘한국장관이 미국정책을 비판하면 안 되느냐’라고 하여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런데 노대통령 말은 그 내용을 액면그대로 놓고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이 없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노대통령의 말에는 독백(獨白)과 방백(傍白)의 개념구분이 없다.

연극대사에 독백과 방백이 있다. 독백은 아무도 없는 연극무대에서 혼자 하는 말이다. 반면 무대위에 여러명의 배우가 있을 때 그중 한 명의 배우가 하는 말을 무대위의 다른 배우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들에게만 들리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말이 방백이다.

연극배우가 이러한 구분에 따라 연기를 해주어야 극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국익에 관한 한 가벼운 농담조차도 사전에 철저한 계산 끝에 해야 하는’ 국제외교무대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외교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외교의 최종책임자인 우리나라 대통령의 말에는 이러한 개념구분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 보통시민들도 마음속에 있더라도 내뱉어서는 안되는 말이 있고, 설사 뱉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함은 상식이다.

이와 같이 괄호 안, 즉 흉중(胸中)에 넣어두어야 할 말과 괄호 밖에 내뱉는 말을 구분하는 것은 세상살이 지혜라고 할 것도 아닌 최소한의 상식이고 예의다.

괄호 안의 말이 괄호 밖으로 나올 때에는 나름대로 치장도 하고 주변도 살펴보고 상대방의 입장에 한번 서보기도 해야 함은 당연하다.

보통시민들도 이러하거늘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노대통령의 위 국무회의 발언에 (그것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한 말이다!) 과연 위와 같은 성찰과 배려, 고민이 배여 있는지 심히 의문이다.
 
둘째, 노대통령은 자신의 지위와 말의 영향력을 망각하고 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로서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헌법 제66조).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ㆍ외교ㆍ안보 등 전 영역의 최종책임자로서 국익을 위하여 일거수일투족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직자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언사를 보면 과연 그가 그러한 중차대한 지위에 있고, 따라서 공석과 사석을 불문하고 그의 말 한마디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공식멘트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심히 의문스럽다.

우선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지 일년도 채 안되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했다.

또한 탄핵의 위기에 처한 재작년 3월 전 국민이 지켜보는 TV 직접연설을 통하여 자신의 형에게 인사 청탁조로 돈을 건넨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을 지칭하여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 사장은 그에 모멸감을 느낀 나머지 그 다음날 새벽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이와 같은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이 헌법사상 초유의 탄핵결의를 촉발하는 요인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결과로 이어진 탄핵소추와 그에 대한 탄핵역풍이 17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에 과반수를 안겨준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결과를 사전에 예상하고 이러한 언사를 하여 탄핵을 유도하였다면 그는 정치 10단인 노회(老獪)한 정치인일 테고, 만약 별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였다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처사를 한 셈이다.

셋째, 노대통령의 말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시의 부적절(時宜 不適切)함이다.

야구에 적시타(適時打)가 있듯이 세상사에는 항시 타이밍이 문제된다. 최근의 수해골프파동에서 보듯이 골프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수해지역에서 주민들이 물난리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공직자들이 모여 골프를 즐기는 그 시의 부적절함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권여당이 1,000만표이상의 차이로 제1야당에게 참패한 5·31 지방선거 직후 했다는 노대통령의 말은 시의 부적절함의 극에 달한다.

‘선거에 한두 번 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며, 지방선거에 졌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던가.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책임자인 노대통령의 위와 같은 말은 마치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에 문상 가서 상주에게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니 오히려 기쁜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신예찬」의 저자 에라스무스는 ‘시의 적절하지 못한 옳은 말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고 이미 수 백 년 전에 설파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을 명심, 실천해야 한다.

노대통령의 언행의 문제점은 열린우리당 이부영 상임고문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한마디로 말이 빠르고 경박한데 있다.

노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지 더 이상 운동권 출신의 초선의원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그간의 언행을 보면 아직도 국회청문회장에서 명패를 집어던지는 방식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었던 초선의원 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노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막중한 지위를 인식하고,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고자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는 옛 성현의 가르침을 명심,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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