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지인들로부터의 결혼 청첩이 부쩍 늘었다. 결혼을 앞둔 청춘 남녀들은 이 의식이 당연히 본인이 살아온 날 중에 가장 돋보이고 행복하며 낭만적이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들의 부모 역시 지금까지의 인생을 한번 매듭짓고 자녀들의 결혼생활은 본인들 보다 더 나아지기를 기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의 이혼률이 1950년대에 비해 13배 이상 늘었다 하고 OECD회원국 중 미국과 함께 1위를 다투고 있으니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조부모나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세태가 이러다 보니 이혼플래너라는 신종 직업까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혼 위기에 처한 가정의 화합을 유도해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거나 원상태로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이혼 당사자 간에 최소한의 상처를 주면서 원만하게 이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 하니 새 직종의 탄생을 마냥 환영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요즘 결혼식장에 가보면 예식의 형식이 많이 파괴되어 있다. 주례도 없이 진행하는가 하면 축가를 비롯한 각종 공연들이 조그마한 문화행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채롭게 전개되기도 한다. 어른들 입장에선 약간 당혹스러울 수 있다.

예전엔 피아노 한 대로 신랑·신부 입·퇴장만 잘 도와줘도 감지덕지 하지 않았던가. 다양한 퍼포먼스 속에서 그래도 아직까지 전 세계의 결혼식장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은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바그너의 '혼례합창'일 것이다. 물론 원곡대로 연주하지는 못하고 피아노 소품으로 편곡된 형태로이지만.

펠릭스 멘델스존은 우리에게 알려진 작곡가들 중에서 비교적 저평가되어 있는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유태인 작곡가로서 나치 시절에 노출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내일부터 '한여름 밤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이다."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은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이다. 17세의 멘델스존이 이 희곡을 읽고 동화적인 스토리에 매료돼 무려 17년간 13곡의 극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희곡은 요정들이 나타나 숲 속에 있는 남녀의 눈에 꽃즙을 발라 서로 사랑에 빠져 희열로 가득찬 한여름 밤의 축제를 즐긴다는 내용이 요지이다.

극 중 등장하는 '결혼 행진곡'은 전 세계의 신랑, 신부를 위한 축복의 음악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오고 있다. 음악사에 등장하는 작곡가 중 가장 유복했다고 알려져 있고 이름인 펠릭스가 행운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멘델스존. 그의 결혼행진곡은 천상 멘델스존과 닮았다.

반면 작년에 베르디와 함께 탄생 200주년을 맞았던 리하르트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 '로엔그린'은 백조와 관련된 독일의 설화를 바탕으로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곡을 완성했다. '로엔그린'의 3막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은 아다지오와 누르듯 표현되는 진중한 음악적 특징으로 인해 특히 신부가 입장할 때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로엔그린은 바그너 오페라 중에서도 드물게 비극이어서 극 중 혼례의 합창이 처음부터 신부입장송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1858년 영국의 빅토리아 공주가 자신의 결혼식에서 '혼례의 합창'이 연주되게 한 이후로부터 다른 상류층의 여성들에게 전파되어 전 세계 결혼식장으로 퍼졌다고 전해진다.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이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 같다면 바그너의 혼례의 합창은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지혜를 발휘하고 사려 깊게 살아가라는 친정아버지의 마음을 깊은 울림으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통계에 의하면, 이혼 사유 중에 혼수와 관련된 갈등이 원인이 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한다. 달리 말하자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로 인해 결혼생활 자체가 파경을 맞는 셈이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차제에 결혼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심도 깊게 이루어지고 기성세대의 큰 각성 없이는 앞으로도 많은 젊은이들을 결혼생활의 위기로 내몰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히틀러가 사랑한 바그너와 유대인인 멘델스존이 결혼식장에서 음악으로 역할을 다하듯 이 가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예비부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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