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세대인 30~40대 부모들은 빠듯하게 사는 데 비해 고도 성장기에 재력을 축적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손녀들에게 미리 재산을 증여하는 '세대 건너뛰기 재테크'가 확산되고 있다.

손자·손녀들을 직접 돌보는 중·상류층 황혼 육아족(族)이 늘어난 데다, 절세 효과를 챙기려는 큰 손 고령자들의 수요가 가세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자들은 돈이 있어도 장수(長壽) 위험이나 연금 고갈 등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갑을 잘 열지 않지만 손주 사랑을 내세운 금융상품엔 돈이 몰린다.

김근호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은 "세대 건너뛰기 재테크는 기본적으로 손자·손녀 사랑에서 시작하지만 잘 활용하면 절세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어 70~80대 자산가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요즘 은행·증권사 세무사들은 조부모가 부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손자·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세대 생략 증여'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

세대 생략 증여는 일반 증여에 비해 30% 할증 세금이 붙지만, 조부모→부모, 부모→손자·손녀로 대물림 증여를 해서 이중(二重) 세금을 내는 것에 비해서는 40%가량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김영준 삼성증권 세무전문위원은 "자녀에게 사전 증여를 했다가 10년 내에 사망하면 상속 재산에 합산되어 세금을 더 낼 수 있지만, 손자에게 직접 주면 상속인이 아니어서 상속세 합산 기간이 5년으로 줄어들어 유리하다"며 "뒤늦게 상속세를 줄여보려는 어르신 고객들이 세대를 건너뛰어 증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4월 고령자의 금고 속에 잠자고 있는 자산을 시중에 끌어내기 위해 '교육 자금 일괄 증여 비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내년까지 한시 시행 중인데, 조부모가 손자에게 신탁 상품을 이용해 학비를 증여하면, 1인당 1500만엔(약 1억5000만원) 한도로 비과세 혜택을 준다. 고령자의 부(富)를 젊은 세대로 이전시켜서 내수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조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최고 증여세율이 50%로 높아 증여에 대한 부담이 컸던 일본 중산층 조부모들을 중심으로 가입이 늘면서 1년 만에 4300억엔(약 4조3000억원) 이상의 돈이 이름표를 바꿔달았다.

한 운용사 대표는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10년 후엔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 "고령자에게 잠겨 있는 자산을 사회에 풀어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부의 세습이 사회 양극화를 확대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어서 충분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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