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오스트리아의 서쪽, 독일의 서남쪽, 스위스의 동쪽이 맞닿아 있는 곳에 브레겐츠라는 예쁘고 고즈넉하고 여유가 넘치다 못해 물기가 마르지 않은 풍경화처럼 싱그러운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 3국에 걸쳐 있는 알프스의 만년설이 유구한 세월 동안 녹고 흘러 바다보다 광활한 호수를 만들었으니 이 호수에 좀 더 확실한 지분을 가진 오스트리아가 브레겐츠라는 도시의 주인이 되는 셈이다.

말이 호수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 언뜻 봐도 웬만한 우리 남해안 바다의 스케일을 넘어선 모양새다. 배를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쳐다보는 각도에 따라서 각 국의 국기가 달린 건축물들로 묘한 풍경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 브레겐츠에서 매년 여름이면 브레겐츠 음악축제가 개최된다. 유럽의 여름 페스티벌 중엔 야외에서 열리는 축제가 수도 없이 많지만 브레겐츠 음악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10년쯤 전에, 바그네리언들의 성지라는 바이로이트와 윤이상이 세계적인 음악가로 발돋움했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를 둘러보고 뮌헨을 거쳐 잘츠부르크로 향해 내달아 가던 중, 여정을 단숨에 급선회하며 약간은 충동적으로 들렀었던 브레겐츠. 바로 그 브레겐츠는 해마다 여름이면 맘이 먼저 달려가는 설레임 1번지가 되어 버렸다.

당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무대에 올렸었는데 마치 야구장 같은 객석에서 시차와 여독으로 졸리우고 피곤한 몸을 호수 위를 쓸고 가는 바람결에 맡기곤 거대하고도 창의적이며 하이테크의 결합체 같은 무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보덴 호수(Bodensee)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각 국의 관람객들 모습도 무척 기억에 남았는데, 독일 쪽에서 오는 관객들은 배를 타고 뉘엿뉘엿한 석양을 마주하고 마치 자기들이 무대 위 주인공인양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곤 그들이 객석에 앉자 공연이 자연스레 시작되었는데 그 호흡이 절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브레겐츠는 인구가 20만이 채 되지 않는 도시지만 이 축제 하나로 일약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연간 70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고는 2000억원을 상회하는 직간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거양하고 있다 하니 부러움을 넘어서 경외심마저 들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일부 전문지에서는 세계 3대음악 축제에서 잘츠부르크와 바이로이트 다음 순서인 루체른을 슬쩍 빼고 브레겐츠를 대체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수상 오페라 축제인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시작된 것은 1945년이었다. 처음에는 호수에 큰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공연을 했는데, 관객들은 호숫가에서 공연을 감상했다. 그런데 그 행사가 브레겐츠와 보덴 호숫가의 여러 도시들을 찾는 휴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1948년부터 호수 위에다 아예 무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레퍼토리는 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나 프란츠 레하르 같은 이들의 빈 오페레타가 주를 이뤘는데, 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은 야외에서 본격적인 오페라를 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수상무대는 무대를 매일 바꾸거나 이동하는 조립식이 아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부술 수 없는 콘크리트와 철골로 된 견고한 고정 무대다. 그리고 한 작품은 보통 2년의 수명을 가진다. 즉 두 시즌 동안 같은 작품을 공연하고 2년 후에 다른 작품으로 바꾼다. 그래서 시즌이 아닐 때도 호숫가에 서 있는 거대한 세트들은 멀리서 보면 장관이다. 이 무대는 특히 석양에 두드러지는 보덴 호의 랜드 마크인 것이다.

천혜의 비경을 병풍삼아 바다 위에 떠있는 플로팅 스테이지. 그 위에서 펼쳐지는 한 여름 밤의 동화같은 퍼포먼스. 왠지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세계적인 조선기술을 문화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는 도시. 우리도 브레겐츠를 꿈꾸어 보면 어떨까. 잊을 수 없을 바다, 잊을 수 없을 음악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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