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대첩이라고 부를만큼 영화 '명량'은 연일 새로운 관객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개봉일 최다 관객(68만 명), 역대 최단기간 100만 돌파(개봉 37시간), 개봉 12일 만에 최단기간 1000만 관객 돌파, 한국영화 최초 관객동원 1500만이라는 꿈의 숫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00만 관객은 영화 '괴물'(2006)보다 9일 앞섰고, 관객동원 1위였던 2009년의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1362만 명)의 기록마저 무너뜨렸다.

'명량'은 임진왜란 이후 왜군이 재침한 정유재란 때의 해전으로, 1957년(선조 30년) 9월1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를 말한다. 더구나 명량대첩은 거북선 없이 출전해 큰 승리를 이끈 전쟁이다.

솔직히 이 영화를 기획했을 당시에는 이런 대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실패의 확률이 대단히 높은 잘못된 기획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극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물과 사건이다. 그런데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인물이다. 따라서 인물에 대한 극적인 신비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순신'하면 연대나 수치는 몰라도 무엇을 한 사람인지 정도는 다 안다. 쉽게 말해 영화의 내용이 어떨 것인가는 예측가능한 일이다. 반전을 기대할 수 없고 막장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다 해도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은 흥행에 성공했다. 성공도 그냥 성공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여름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문가들은 흥행에 대해 여러 분석들을 내놨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들었다. 다시 말해 장군의 스토리에 한국사회가 새롭게 열광하는 것은 이 시대 리더십의 부재와 갈구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평가로는 '명량'의 최대 장점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15세 이상 관람가로 성인부터 청소년까지 모두 이끌 수 있는 콘텐츠란 점을 들었고, 61분 간의 해전 신(Scene)은 아이들을 꼼짝없이 묶어두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온 국민을 슬프게 한 세월호 참사의 팽목항이 명량대첩의 울돌목과 가깝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 속에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 기획사의 과감한 투자, 첨단 제작 기법, 배급사의 마케팅 능력 등이 한데 어우러져 흥행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명량'의 성공요인은 지금까지 이순신과 관련된 작품들이 대체로 전기적 일대기를 통해 보통사람 이상의 특별한 성웅(聖雄)을 만드는데 급급했다면 '명량'은 인간적 이순신을 그렸다는 점이다.

23전23승의 신화적 전술가라 할지라도 전쟁에 앞서 자신에게 몰려드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며 수없이 되뇌는 모습이나, 전투가 끝나고 적군과 아군의 시체가 수없이 흐트러져 있는 대장선 갑판 위에서 소년병이 건네주는 토란 한쪽을 받아먹으며 "먹을 수 있어 좋구나"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있음을 감사한다. 영화 '명량'의 바닥에는 위대한 위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배고프면 먹는 인간적 면모가 깔려 있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을 통해 나라사랑의 도덕적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업영화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에게 재미를 줘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영화는 그 콘셉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재미로 주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국민과 지도층이 시대정신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라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그의 한 마디가 찡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지금 이 나라 지도자들이 너도나도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그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말은 이순신처럼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말고 인간 이순신을 배우기 바란다.

영화 '명량'은 결코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결말조차 관객들은 다 알고 봤다. 그러면서도 성공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라 위정자들에게서 느끼는 허무가 너무나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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