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서점에 가보면 다종다양한 책들이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행 관련 서적들이 모여 있는 코너들은 늘 새로운 트랜드로 중무장된 신간들이 넘쳐 나는 곳이다.

텔레비전을 켜도 각종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출연자들이 다녀온 곳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금방 명소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특히 여름은 낭만적인 휴가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국외여행, 그 중에서도 낮이 길고 다양한 축제로 지상의 낙원을 표방하는 유럽여정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기 전에 해야 할 도전이라는 버킷 리스트의 상위 포지션을 차지한다.

실제 유럽의 여름여행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그 속에 오랜 시간 퇴적되어 있는 세월 속으로의 여행이다. 대부분 모노톤이지만 의외로 화려한 기품이 있고 느리지만 속도를 압도하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들을 만나게 되고 그 도시 속에 살았거나 살고 있거나 또는 잠시 머물기라도 했던 인물들이며 그들이 남겨 놓은 인연이나 작품 또는 살던 터나 애장품까지도 여행자들의 영혼과 발걸음을 붙들어 두는 것이다.

도시의 수에 버금가는 음악축제가 존재한다는 유럽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음악축제가 있으니 세계 3대 음악축제로 불리는 잘츠부르크음악제, 바이로이트음악제, 루체른음악제가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잘츠부르크음악제는 원래 예더만이라는 연극작품으로 시작된 축제이지만 모차르트의 고향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말미암아 성공적인 음악축제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도시 전체가 모차르트 마케팅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그야말로 모차르트에 의한 모차르트를 위한 모차르트의 도시이다.

하지만 이 도시가 오늘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바지문화가 한창일 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카라얀 브로마이드라도 하나쯤 벽에 걸려 있으면 품위 있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비치던 클래식계의 지존이었다.

우리에겐 조수미를 발굴해 더욱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카라얀 역시 잘츠부르크 출신이라 대선배 모차르트를 내세우고 본인이 예술감독을 맡았던 빈필과 베를린필을 이 축제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앉히기 시작하자 전 세계의 클래식 팬들은 잘츠부르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공간적 배경이기도 한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도시 빈보다 더 파괴력 있는 오스트리아의 보물이 되었다. 

독일의 바이로이트는 바그너에겐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도시이다. 매년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같은 레퍼토리를 새로운 연출과 해석으로 세상에 내어 놓는, 어쩌면 매우 단순해 보이는 폼을 가진 음악축제이다.

하지만 바이로이트음악제는 향후 10년간 티켓이 매진되어  대기를 걸어 두어야 하는 열성적인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도 바그네리안으로 불리우는 정서적 연결고리를 가진 네트워크의 힘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북유럽으로부터 전해오던 일종의 '반지'설화는 이 축제의 근간이 될 뿐 아니라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천적 소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축제가 열리는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은 바그너의 광팬이자 영원한 후원자였던 루트비히 2세의 선물이기도 한데 바그너가 직접 설계를 해서 그의 천재적인 면모를 살짝 보여준 사례가 되기도 한다. 객석은 다소 비좁고 딱딱하지만 기이할 정도로 깊숙이 내려앉게 설계된 오케스트라 피트로부터 전해오는 관현악의 울림은 바그너의 연출가로서의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최고의 음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지금도 많은 바그네리안들을 바이로이트로 유혹하는 심장의 떨림 같은 것이다.

스위스의 루체른은 사실 음악의 도시로 불릴만한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곳이다. 필라투스산을 오르내리는 곤돌라를 배경으로 스위스의 전형적인 호수를 낀 아주 예쁜 휴양도시인데, 여기에 망명한 바그너가 들어와 살면서 바그너의 장르를 넘나들던 천재적인 친구들이 찾아들게 되었고 리스트의 딸이기도 한 코지마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암튼 일정 기간 동안 바그너에게 안식과 충전을 제공한 루체른이라는 도시는 백년도 더 지나, 암 수술 이후 휴양지를 찾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루체른 정착으로 인해 뉴 밀레니엄 시대에 급부상한 세계적인 음악도시가 된 것이다.

이들 세 곳의 음악제에는 매 여름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이룬 듯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들으며 황홀경에 빠지거나 바그너의 주술에 잠시 육신과 영혼을 맡기고 인생의 궁극에 도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성공한 음악축제에는 인물콘텐츠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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