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作

▲ 윤명옥(47·수월동)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파블로 네루다와 작은 어촌 마을의 우편배달부가 이어간 우정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소설.

사랑에 빠진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쳐줘 끝내 그 사랑을 이루게 한 시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새로운 삶과 사랑을 이끌어내는 '문학의 힘'을 노래한 소설이자, 위대한 시인 네루다에게 바치는 헌사. 더불어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한 투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어느 무명의 저널리스트의 회고로 시작한다.

때는 1970년대 초반.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우편 배달부로 일하는 마리오는 마을의 가장 고명한 주민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이다.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소녀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조른다.

네루다는 우체부에게 메타포를 가르쳐주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하고, 베아트리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마을을 떠나 있을 때나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에 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간다.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가 목숨을 잃고 네루다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네루다를 찾아와 그의 곁을 지킨다.

작가는 내면적인 네루다, 따스함과 인간적인 유머가 넘치는 '바닷가의 네루다'를 작품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 역시 우체부 마리오처럼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 위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뒤적거리던 젊은 시절을 지나왔다고.

작품 속에서 마리오가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네루다의 시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칠레인 전체의 것, 즉 일상의 삶 그 자체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은 마리오의 아들이 태어나는 울음소리로 끝을 맺는데, 이는 네루다의 시가 사랑의 씨앗을 뿌리더니 '새 생명'이라는 열매까지 맺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가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삶으로 뛰어든, 이 감동적 장면은 작가가 '시인 네루다'에게 표한 최고의 경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고무되어서 책 읽기에 몰두했고 학교에서 하는 모든 글쓰기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멘토가 한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엄청난 힘을 경험한 마리오처럼. 내가 지금 독서회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도 그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리오를 보면서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순수함과 시를 쓰고자 노력하는 열정이 느껴지면서 나도 30대 때까지는 저런 순수함과 열정이 있었는데 어느새 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 나가듯 다 사라져 버린 내 모습에 새삼 나이 들었음을 느낀다. 이젠 지혜를 나이든 만큼 키워나가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칠레의 시대적 배경을 좀 더 공부하고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안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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