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현 학생기자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어르신들부터 대학교 새내기까지)은 한 번씩 수험생이라는 이름하에 지금의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를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수험생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망상도 잠시, 그들은 내년이나 내후년에 있을 대학입시를 위해 이번 여름도 학원이나 학교, 그리고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의자에 앉아 책과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왜 이들은 이토록 공부를 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왜 이러한 생활을 당연시하게 여기어 공부를 하고 있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수험생의 하루. 흔히들 하루의 시작은 이불을 걷어차면서부터 시작된다고들 하지만 수험생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밤잠을 설쳐가며 책을 보는 것부터가 아닐까.

이미 밤 12시를 넘긴 후부터 그들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부스스한 눈으로 아침을 대강 먹고 오르는 통학 버스. 이 버스는 왜 이리도 얄궂게 항상 정시에 학생들을 태우러 올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생각도 잠시, 이미 버스는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해 학생들과의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교문을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또 하루의 일과. '과연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일들이 나를 맞이할까'라는 생각보다 '오늘도 이러이러 하겠지'라는 예고된 예언이 문득 머리를 스치며 우리의 몸은 기계처럼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한다.

분명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정신을 차려보면 뻔한 짓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아침 1교시 종이 방금 울렸음에도 정신은 집에 가있고 시계를 보면 하염없이 터져 나오는 한숨. 그 한숨은 수많은 생각과 피로에 찌든 영혼의 몸부림이 버무려진 하모니이다. 정규 수업도 모자라 밤까지 남아서 하는 야자. 하지만 온종일 공부와의 씨름에서 이미 지친 그들은 야자 때 자느라 바쁘다.

이런 그들이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랍고 안타깝다. 방학 내 그 다음 학기의 내용을 공부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고 만일 그러면 불법이지만 사실상 한다. 안하면 오히려 다가올 다음 학기에 대해 부담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요 며칠 전 서울에 갔다. 지난 4년간 중국에 머물면서 사귀었던 친구들을 만나러 가게 된 것이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카페에 들러 일단 팥빙수부터 시켰다. 빙수를 먹으면서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때마침 그들이 지금 대학 원서를 넣고 있다고 하니 새삼 달라보였다. 그들은 특례로 대학을 간다고 했다. 내심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국내 일반고 학생들은 전혀 꿈꿀 수 없는 특례이기에 한참을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의 얘기에 기울여야 했다.

듣자하니 그들은 12년 특례가 돼 최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들 했다. 12년이라. 굉장했다. 소위 말하는 SKY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여느 학생들과는 달리 치열한 기색이 전혀 없는 12년. 여기에서는 죽어라 공부해도 인서울 대학 입학이란 멀고도 힘든 여정이지만 그들은 정말 쉽게 대학을 가나 싶었다.

여기서 잠시 12년 특례가 무언지 잘 모르고 감이 안 올수도 있기에 간단히 언급을 하겠다. 쉽게 말해 외국에서 12년 간 공부를 해 특별전형으로 국내 대학에 지원을 하는 일종의 입시 유형 중 하나다. 8년, 6년, 5년과 같은 특례는 많아도 12년은 흔하지 않다.

그들과의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스로의 생각에 빠지며 회의감에 휘둘렸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누구는 쉽게 명문대에 진학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왜 이리 치열할까. 왜 대학에 순위가 매겨져 있는 것일까. 왜 대학 입시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단순히 암기해야 하는 주입식 교육에서 비롯된 등급이 아니라 진정 능력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덴마크와 같은 교육의 환경과 질이 상당한 곳의 제도를 도입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제도에도 과감한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어나는 교육의 피해와 학생들의 울부짖음에 귀기울여 새로운 교육제도로 갈아엎었으면 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으나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한 것은 사실이다.

교육이 낙후된 국가는 이후 모든 방면에서 선진화된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이것은 교육이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의 남상(濫觴)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적 생각에서 온 것이다. 비선호적이라도 돈을 꽤 벌 수 있는 직종보다 학생들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택해 그 길을 걸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것은 나 개인의 생각이자 동시에 시민들이 국가에 절실히 바라는 크나큰 소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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