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개조'를 천명했다.

세월호 참사의 뒷면에 있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따라서 국정운영을 포함한 국가ㆍ사회 시스템과 국민의식의 근본적인 대개혁을 통해 새로운 안전시스템 구축과 관피아 등으로 인한 비정상적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8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민간 각계가 폭넓게 참여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가칭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히고, 공직개혁, 안전혁신, 부패척결, 의식개혁 등을 주요과제로 제시했다.

그런데 지난 10일 여야 원내대표단 청와대 회동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국가개조라는 말이 일본군국주의 시대의 용어이며, 권위주의적 하향식 어휘기 때문에 이것을 국가혁신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고, 이를 대통령이 받아들임으로 '국가개조'라는 용어는 이제 '국가혁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럼 '개조'란 무엇이며 '혁신'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개조(改造)는 '사고방식이나 시설, 조직 등을 고쳐 새롭게 만듦'을 뜻한다. 개조라는 용어가 정치에 접목된 것은 1922년 〈개벽〉 5월호에 발표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시작으로 1930년대에 일어난 국가주의 운동의 하나로 일본 우익과 국가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했다.

일본의 '국사대사전'(길천홍문관, 1985년)에는 일본 파시즘 운동가의 용어로 '혁명' '유신' '국가개조'는 거의 같은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혁신(革新 : innovation)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을 뜻한다.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어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Schumpeter)가 혁신을 "창조적 파괴"라는 경제학 용어로 설명한 이후 기업경영과 신기술에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말이 됐고, 우리 삶에서도 가장 익숙한 단어 중 하나가 됐다.

혁신은 한자로 '가죽 혁(革), 새 신(新)'이다. 곧, '가죽을 벗겨내고 새 살이 돋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가죽이 벗겨질 대상이 누구이며' '누가 가죽을 벗길 것인가'에 관한 확실한 개념이 서 있어야 한다. 혁신은 개혁과 다르다.

개혁(reform)은 개조와 거의 같은 의미로 정치체제나 사회제도 등을 합법적이고 점진적으로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으로 속도가 빠르고, 인위적으로 추진된다는 특징이 있다. 사법제도개혁, 화폐개혁, 종교개혁, 의료개혁 등이 좋은 예다.

개혁이 인위적이라면 혁신은 자연적인 발로를 기초해야 한다. 개혁은 제도적 변화라면 혁신은 삶의 문제다. 개혁은 확실한 주체와 객체가 극명하게 다르지만 혁신은 '가죽이 벗겨질 대상'이 나 자신이며, '가죽을 벗길 자' 역시 나 자신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표관리가 뚜렷해야 하고, 이를 실천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름만 바뀐 것 뿐 언제나 하는 이야기로 공직자들이 냉소적 시각을 가진다면 이는 영락없는 실패의 징조다.

혁신은 시민들에게 놀랄 만한 행정 서비스를 만드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혁신이다.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민생활을 편하고 좋게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도장이 없으면 관공서의 서류 하나 작성하지 못하던 것이 사인으로 대체된 것이 바로 혁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언해 두고 싶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개조는 지난 5월 19일 담화에서 처음 언급됐는데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야당대표의 건의를 받아 용어를 수정하게 됐다는 것은 청와대 비서진이나 정부각료들이 도대체 비판기능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대통령이 하는 말과 행동은 무조건 옳다고만 여기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용어의 선택은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가치인데 야당원내대표가 말할 때까지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은 왜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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