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한동안 대학이나 국책연구소의 연구과제로 다문화주의(多文化主義/multiculturalism)가 인기를 구가한 적이 있었다. 학문 영역에 관계없이 다문화와 엮어서 결과물을 내면 어지간히 채택이 되는 시기도 있었고. 그러나 지금은 연구과제로서의 다문화는 빛을 많이 잃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본격적으로 다문화사회에 진입하면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례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또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노출되면서 다문화를 더 이상 탁상공론의 대상으로 두고 가기가 머쓱해진 까닭일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비율이 10%를 넘어서고 다문화 가정이 20만 가구를 상회한다고 한다. 단일민족사관에 익숙한 세대들에겐 깜짝 놀랄만한 수치이자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단순히 이주 배우자들에 대한 배려나 부분적인 정책들로 다문화사회에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찌감치 다문화적인 양식에 익숙했을 법한 유럽국가들의 경우에도 다문화사회는 현실에서 그리 녹록하지 않은 듯하다. 2011년 프랑스의 사르코지정부는 집시와 동유럽 출신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했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다문화사회구축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그 이면엔 높은 출산율과 동화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혜택만 누리려 하는 이민 인구에 대한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로 인해 원주민들의 실업이 늘어간다는 밥그릇 논리가 개입되어 셈이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얘기에 매번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처용이다.

서발 발기다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자 자리보곤 가라리 네히어라
둘혼 네해엇고 둘흔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란 아자날 엇디하릿고

아내의 간통현장을 보고도 이처럼 노래를 지어 부르는 처용의 관대함에 놀라 역신은 용서를 빌고 물러가면서 앞으로 처용의 얼굴 그림만 보아도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니 후에 백성들이 귀신을 물리치는 의식에 활용했다는 것이 바로 처용탈, 처용가, 처용무로 표현되는 처용콘텐츠이다.

처용을 다문화 가정의 원조처럼 얘기하는 것은 처용탈에 나타나는 얼굴모양이 매우 이국적인데,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아라비아에서 중국을 거쳐 경주까지 해상무역로를 개척했던 사라센(이슬람)상인이 아닐까 추측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무슬림의 의무인 ‘자카트’ 즉 희사(喜捨)의 정신이 처용가를 탄생시킨 관대함과 베품의 근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론과 함께.

처용설화의 발원지인 울산은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조선산업을 기반으로 한 공업도시이다.

당연히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다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선 ‘처용문화제’라는 행사를 오래전부터 개최해 오고 있는데, 언젠가 우연히 들렀던 처용문화제의 행사 슬로건 ‘화해와 용서’를 보고 혼자 슬쩍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이라는 도시규모와 성격에 맞는 행사가 메인이 되어 개최되고 있다. 지역정서와 시대정신 그리고 시장상황까지 잘 고려된 좋은 문화상품이라 여겨진다.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이방인이라는 처용의 신분에 초점을 맞춰 "신라에 대한 외국인 이주자, 즉 타자로서 하염없이 밀려드는 분노를 넘어선 애상과 허무의 정감이야말로 '처용가'를 현재적 시각으로 재해석해야 할 서정의 뇌관"이라고 말했다.

우리지역, 거제 역시 다문화의 정점에 있는 도시이다. 이방인이 몰고 오는 크고 작은 충격들, 그들을 통해 야기된 내 아이덴티티의 균열을 통용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정체성으로 변환해내는 것, 이것이 거제를 살아가는 우리가 대단히 창의성 있게 이끌어 내어야 할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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