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정부는 올들어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해 각종 문화시설과 공연을 무료 또는 할인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 했다. 국민의 문화향수권을 확장하여 국격과 삶의 질을 함께 높여 보고자 하는 의도라고 하니 바야흐로 문화도 복지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문화라는 어휘가 우리에게서 처음 사용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906년, 어떤 선비가 고종에게 올린 상소에 "우리도 교육을 바로 잡아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 이전에는 구전이나 문헌으로 확인되질 않는다. 일본인들이 중국고전에서 차용하여 들여온 것으로 보이며 당시 이런 새로운 개념에 공감되어 상소에 반영했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5,000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불균형이 극심하니 이 수치를 가구마다 적용하면 현실적으론 상당한 괴리가 있겠지만 아직은 국민소득통계를 대체할 만한 다른 지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편, OECD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는 '삶의 만족도' 부문에서 36개국 중 25위로 비교적 하위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전히 소득이 행복도의 주요 결정계수라는 이론들이 건재한 만큼, 급성장을 통해 이루어 낸 국민소득지수와 삶의 만족도간의 상관관계에는 조금은 다른 기대들이 현실적인 불만을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판단된다. 진단에 따라서는 소득과 삶의 질 간의 엇박자가 교육문제, 산업구조, 노동환경, 주거환경, 가족제도 등에 있다 하는데, 엄밀히 보면 이들 요인들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화는 특정한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활방식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얼핏 문화예술로 통용되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인간이 가지는 필요한 욕구들이 적정한 소득수준에 도달해 해결되면 보다 능동적인 욕구 즉, 문화예술과 같은 자아존중 또는 자아실현의 단계로 나아간다고 미국의 심리학자 메슬로우(A.Maslaw)는 그의 '욕구위계설'에서 역설한 바 있다.

이런 욕구들이 사회적, 제도적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만족도는 기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정부의 '문화의 날' 지정은 시의적절하다 여겨진다.

일찍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철학자 그리고 칸트, 니체, 톨스토이같은 근세의 철학과 문필의 대가들도 문화예술을 통한 인간 본성의 회복에 주목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해 왔으며 나아가 문화예술이 국가통치의 기반으로써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가에 대해서도 설파한 바 있다.

문화예술이 가지는 정서적 순화에 따른 인간존엄과 공동체 번영에의 기여 등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으리만큼 그 중요성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기술이 혼존하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일찌감치 21세기를 6T시대로 정의한 바 있다.

이른바 IT(정보), BT(생명공학), NT(나노), ET(환경), ST(우주항공), CT(문화콘텐츠)가 그것들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CT는 앞의 다섯 가지 중요기술 분야의 정점으로써 테크노시대의 온갖 부작용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란 점이다.

7월이면 국가나 지역 모두 새롭게 정렬된 리더십을 갖추게 된다. 우리의 리더는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를 정비하고 보존해야 하며, 가치체계로서의 문화를 바로 세우고 공유해야 한다. 또 고급문화로서의 예술을 육성하고 이를 다양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문화가 왜 복지인 시대인가에 대한 인식이 여물어지지 못하면 결코 존경과 부러움을 사는 도시와 국가로 나아가기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특정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했었다는 이야기가 '심야통행금지'처럼 어색해지는, 문화를 보고 문화를 입고, 문화를 먹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문화로 가득찬 세상이 서둘러 와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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