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올해는 꽃소식도 빠르더니 더위도 때 이르게 성큼 다가왔다. 푹푹 찌는 차 속에서 에어컨을 한껏 올려 뜨거운 공기를 밀어내자니 아닌 게 아니라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환경이 참 큰일이다 싶다. 등목하고 원두막에 둘러 앉아 우물에 담근 수박 한 통으로 더위를 날리던 낭만시대가 아련히 그립다.

'전설의 고향'같은 납량특집만으로도 한여름 더위를 달랠 수 있었던 소박한 여름이 아쉽다.

최근 일명 '드라큘라성'이라 불리는 '브란(Bran)성'이 매물로 나와서 화제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브라쇼브 남쪽에 있는 이 성은 1212년, 독일 기사단에 의해 요새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후 오스만투르크로부터 헝가리를 지키는 역할을 했는데, 건축물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양식이 추가되면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이 다양하게 결합되었다고 하니 시쳇말로 달아내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브란성은 1920년, 루마니아 공국의 통일에 기여한 공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Marie)여왕에게 감사의 표시로 헌정되었고 이후 딸인 일리아나 공주에게 상속되었는데, 루마니아가 소련연방의 공산국가가 되면서 압수되었다. 공산국가 붕괴 후인 2006년, 합스부르크왕가의 후손들이 성의 소유권을 되찾았는데 이 과정에서 루마니아 지방정부 의회와 마찰이 불거졌다는 게 대략의 정황이다.

하긴 드라큘라성으로 이름이 나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를 호락호락 양보하긴 양자가 모두 쉽지 않을 터이니 있지도 않은 드라큘라로 인해 성의 가치는 우리 돈으로 400억에서 1000억을 오르내리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브란성은 영국 작가 브람 스토커의 1897년작 소설 '드라큘라'에서 주인공인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의 성으로 묘사되었다. 스토커는 15세기 이 지방을 지배했던 잔혹한 영주 블라드 테페쉬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라드는 전쟁포로를 잔인하게 처형하고 이를 즐겨 피의 군주로 불렸다고 한다. 처형 방법 가운데 하나가 포로를 말뚝에 박아 죽이는 것인데, 흡혈귀 심장에 나무 말뚝을 박는 모습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블라드가 죽은 후에 오스만군은 그의 사체를 소금에 절인 후 햇볕에 쬐었다고 하는데 훗날 사람들이 그의 관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흡혈귀가 햇빛에 사라지는 설정도 여기에서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흡혈'이라는 모티브는 신화시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이집트 신화에서 저승과 곡물의 재배를 관장하는 신 오시리스는 열네 조각으로 찢겨져 죽은 뒤 아내인 이시스의 도움으로 피를 마시고 되살아났다고 한다.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관능적 외모를 지닌 인도의 토착여신 야크시도 남자를 유혹해 피를 취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과학계에서는 유전병인 포르피리아병, 또는 광견병에 걸린 환자로부터 뱀파이어의 전설이 나왔다는 분석을 내 놓기도 한다. 포르피리아병은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이 철분과 결합되는 것을 돕는 단백질 포르피린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피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병인데, 이 병의 환자는 잇몸이 내려앉아 정상인보다 이가 크게 보인다고 한다.

또 광견병은 여성에 비해 남성이 걸릴 확률이 7배나 높아서 뱀파이어가 주로 남성인 이유를 설명해 주며 물어뜯는 증상을 보이고 불면증을 앓아서 밤에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같지만 제법 설득력이 있어 뵌다.

뱀파이어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드라큘라'의 작가 스토커는 트란실바니아 근처도 가보지 않고 전하는 이야기로만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마치 박경리선생이 하동을 가보지 않고서도 눈에 그린 듯 "토지'를 써내려 갔듯이.

가히 스토리텔링 전성시대에 사는 우리는 새로운 얘기와 또 다르게 조합된 얘기 그리고 가다가다 막장으로 빠진 얘기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누나의 한' '월녀의 한'과 같은 한(恨)시리즈로 여름을 나던 우리에게도 '드라큘라'는 정서적으로 수용성이 큰 편이었다. 종교적인 도구는 차치하고라도 마늘이 주는 친근성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브란성'은 문화의 원형으로서 잘 보존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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