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4월16일을 국가안전의 날로 제정하고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면서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워낙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다 보니 그 희소성에서 진정성이 느껴질 법도 했으나 이번엔 국민감정이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잔인한 사월을 보름여 넘기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도 모자라 그렇잖아도 애도할 일 많은 유월까지, 우리는 이 먹먹하고 답답한 세월을 달려갈 참이다. 신이 있다면 이처럼 가혹하고 무책임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책임을 따져 묻고 싶을 정도로.

니체는 그의 저서<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고 했다. 이는 당시 유신론으로 중무장된 서양지성계를 뒤흔들어 놓을만한 대단한 도발이었다. 어느 시대인들 태평성대이기만 하겠냐만 니체가 태어난 1844년은 프랑스혁명 이후의 끝자락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근대화와 산업화를 향해 힘차게 질주를 하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던 역동의 시대였다.

반면 니체의 조국 독일은 중세 봉건적 분할에 박제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형국이었는데 니체가 청년기에 접어들 즈음 비스마르크가 나타나 거칠 것 없이 통일 독일을 이루어 가니 니체는 비스마르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이는 니체에게서 애국청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달리 말하자면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본인의 좌표를 점검하고 결정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애를 썼을 거라는 방증이며 본인의 철학을 그저 관념 속에 가두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심증이 진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 그리스 고전에 심취하고 음악적 자질까지 타고났던 니체는 25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고 28살에 처녀작인 "비극의 탄생"을 내 놓는다. 이 책은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집필되었으니 30여 년 인생 선배인 바그너의 음악과 철학적 깊이에 대한 존경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비극의 탄생"에서 그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이 예술의 발전을 이끌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흔히들 아폴론은 순종적이고 정제된 것을 상징하고 디오니소스는 반항적이며 원석 상태의 투박한 것으로 단순화 하는데, 신화만 보더라도 모든 것이 다 원만한 아폴론에 비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신이 아내 헤라가 아닌 인간인 세멜레와 정을 통해 잉태되고 세멜레가 임신 중 죽자 자신의 허벅지에 이식해 출산을 하니 이야깃거리가 좀 되지 않는가 싶다.

그래서 예술작품의 지표가 되는 아폴론과  작품 자체인 디오니소스로 기능을 나누어 보기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인생을 살아 가는 방식도 아폴론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디오니소스적인 현실과 다투고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한 노력으로 개인과 사회 나아가 문명의 발달까지 이루어 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귀족문화가 고루하고 편협하던 당대의 유럽을 바꾸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아폴론적인 목표는 소크라테스의 낙천성과 플라톤의 경건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는 디오니소스적인 반응으로 귀결되었으니 여기에 많은 함축이 존재한다 하겠다. 이른바 신화적 에너지라 할 수 있는.   

니체는 동시대의 과제를 "신화적 에너지를 활성화시켜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확고히 하는 것"으로 보았다. 지금 우리는 신화적 에너지를 활성화해야할 지점에 서 있다.

니체가 죽인 신은 종교적으로 가두어진 신이 아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제도, 양식, 관행, 관계, 허위, 질시, 불신 따위일 것이다.

니체는 1900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실존철학의 문을 활짝 열면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가 서로 반목하는 듯 또 다른 생명과 예술을 빚어내듯, 19세기를 살다 간 니체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비극엔 반드시 카타르시스가 있을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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