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논설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지난 1950년대와 지금을 대충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열 몇배나 증가했다는 수치를 발표했음에도 거기에 대한 감흥들이 별로 없다. 물론 충격도 없고,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표정들이다.

요즘 세상에 자살 충동 한 번 안 느끼면 이상한 팔자라고 여길만큼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크고 작은 고통이 많다는 걸 다 공감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많게는 수십 수백번의 자살 충동과 연습을 해 본 경험이 있고, 필자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살이 늘어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거기에 국민소득이 어쩌고, 도심 빌딩이 아무리 높고 공원이 수려해도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성장수치와 외양이 높아질수록 더 늘어나는 게 자살일 수 있다. 어떤 이가 뉴스에서 자살증가를 들으면서 왜 사회복지가 겉핥기를 하고 행복정치가 허구만 늘어놓는가 하고 혀를 찬다.

노년세대에게 기초연금을 지불하고, 참전용사에게 생계를 지원하며, 불우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이나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원을 하는 행정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는데 왜 자살하는 사람은 더 늘어가고 범죄는 끊이지 않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리석은 평가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햇볕은 더욱 기승을 부리는데 물줄기가 조금 굵어지는 호스를 뿌려댄다고 무리의 행군 속도가 편안해진다는 어설픈 비유가 생각난다. 인구가 늘어가고, 문명의 이기가 디지털화 될수록 인간은 점차 혼자 비좁은 공간 속으로 갇히고 고독은 하늘로 뻗어가는 세상이다.

그 옛날 마당과 남새밭을 오가며 비좁은 토방에서 온 가족이 북적이며 살았던 가족의 행태는 원룸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원룸 속에 갇힌 인생의 행로는 철저히 혼자 험로를 생각하고 개척하는 독불장군의 시대로 바뀐지 오래다.

그러니 당연히 자살 환경이 증가하는 것이다. 자살은 본시 혼자만의 결단이고, 충동이다. 그런데도 그런 자살이 심심하다고 동아리를 원하고 결속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얼마 전 세 모녀가 선택한 동반자살의 경우와는 다른 양상들도 나타난다.

어떤 불행한 현상이 소문으로 드러나고 공동체가 거기에 잠시 공감하여 대책을 운운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정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행정 조직의 한계에 갇혀 지내는 관료들이, 그저 주어진 조직생활의 보수와 안정 속에서 전혀 다른 걱정과 고통을 감내하는 집단적 종사자들이 이토록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살이와 질곡의 심중을 헤아리고 복지대책을 내 놓는 내용들이 제대로 된 해답이 될 턱이 없다.

차마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생업의 무게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온갖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살아 갈 염치를 상실한 사람들이 늘어가는 데 의례적인 기획용지에 복지대책을 적당히 구상해서 내 놓는 그런 대안들이 얼마나 공감을 사고 사회적 불행을 예방할 수 있는지 물어보나마한 일이다.

돈이 생기면 인륜이 멀어지고 천륜도 버리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일까.

방문객이 귀찮거나, 서로를 편하게 하자는 구실로 게스트 하우스를 만들고, 침실과 TV 앞에 홀로 남은 사람이 보는 세상에는 오직 고독한 망상과 즉흥적인 욕망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 세상작태를 바꾸어보자고 인문학을 가르치고, 여행을 권유하고, 부질없는 욕망을 제어해 보기도 하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달려가는 속도와 힘 앞에는 중과부적이다. 적어도 자살하는 사람의 심성의 마지막 가치는 '이도저도 아닌 바에야 나를 버리는' 자기 부정의 양심이라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살아남는 사람들이 모두 독하다는 게 아니라 자기를 죽일만큼 독한 자살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왜 그럴 이웃을 모르고 사는 가에 대한 인간적 유대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자살방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있다면 그건 먼 거리의 대중을 향해 무턱대고 확성기를 울려대는 동네방송이 아니라 지금 조우하고 관계하는 가족, 친구, 선후배 등의 지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살피는 마음이 진정 내게 있는지 반문하는 자세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자살은 그저 한 개인이 스스로를 죽일만큼 혹독한 선택을 하는 잔인성이 있지만, 그 잔인성은 버려 둔 나머지 세상을 살아가는 주변을 향해 던지는 모질고도 섬뜩한 충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귀를 귀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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