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옥례 계룡여심

고속도로를 달린다. 시끄럽던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뒤돌아보니 어느새 잠들어 있다.

남편은 이때다 싶어 속도를 더 낸다. 차창 밖으로 풍경들이 휙휙 달아난다. 마을 어귀에 우뚝 솟은 나무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져 있다.

고속도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자동차의 속도가 너무 빨라 나의 시선이 미처 그 풍경들을 쫓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는 급경사나 급커브가 거의 없다. 돌아가는 거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때로는 터널을 뚫기도 하고 산을 두부 자르듯 잘라내기도 한다.

덕분에 대부분의 구간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막힘없이 곧게 뻗은 길, 확 트인 시야.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주의 유혹에 빠져든다. 쌩쌩 바람을 가르며 달려간다.

간혹 속도를 내지 못하는 차들이 앞에서 미적거리기라도 하면 상향등을 번쩍이며 자리를 내어주길 재촉한다. 앞서가는 차들을 하나둘 따라잡을 때마다 느끼는 희열은 속도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마치 자동차 경주에 출전한 선수들 같다. 출발 총성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선수들.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앞차와 뒤차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양보의 미덕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들도 조급하다. 행여 뒤처질세라 규정 속도를 위반해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차들이 획획 지나갈 때마다 고무 탄내가 코를 자극한다.

굳이 고속도로가 아니더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높고 낮은 산을 품어 안으며 돌아나가는 길, 앞서 가는 차의 속도에 맞춰 줄줄이 꼬리를 달고 가야 하는 좁은 길, 여기 저기 웅덩이가 패여 차가 달릴 때마다 파도타기를 하듯 출렁이는 길.

모두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이어지는 길들이다. 앞차와 뒤차 사이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급한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내어 주고 물 흐르듯 흐름을 따라 달려간다.

이러한 국도를 달리다 보면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여유로워진다. 주변의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되고 때로는 사색에 젖어 들기도 한다. 창문을 열고 달리며 철 따라 변하는 자연의 냄새를 맡는다.

봄이 오면 야산에서 품어져 나오는 풀꽃 향기에 취하고, 여름에는 푸릇한 풀냄새에 취하고, 가을에는 달콤한 감 냄새에 취하며, 겨울에는 속살을 드러낸 논밭의 흙냄새에 취한다. 또한 사시사철 변함없는 마을의 온화한 정취에, 넘치는 인정에 취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고속도로로 향하는 행렬에 떠밀려가고 있다. 남들처럼 쉽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힘들고 지칠 때면 잠시 쉬어가고 싶고 느릿한 걸음걸이로 걷고 싶지만, 상향등을 번쩍이며 뒤쫓아 오는 차량에 밀려 달려간다.

머릿속은 항상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쫓아오는 이에게 뒤처질세라 달려간다. 때로는 숨이 목까지 차오르기도 하지만 행렬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본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에 많은 것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위한 나만의 길을 가기에 여념이 없어서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들과의 왕래도 뜸해지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자주 못하다 보니 그들 또한 내 삶의 반경에서 멀어지고 있다.

가끔씩 혼자가 되어 창가에 서 본다.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차 한 잔 함께 할 친구가 그리워진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의 종착역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팽팽한 고속도로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고 싶다.

곧게 뻗은 직선이 아니면 어떠리. 가다 막히면 돌아가고 힘이 들면 잠시 차를 세우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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