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논설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흔히 불가에서는 뭇 사람이 인연과 습관으로 세상을 산다고들 한다.

태어나고 자라는 본연의 사슬이 그러하고, 그 태생으로 인한 일가친척의 조직성과, 성장을 통한 학습의 인연과 직업의 인연, 남녀 간의 인연 등이 일생을 지배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흔히 지연 학연 혈연으로 일컫는 대표적인 인연의 환경은 여간한 변화가 아니고는 벗어날 수 없는 생존의 근간이다.

여기에 타고난 천성과 후천적 습관이 스스로의 인품을 조형하고, 비록 자신을 관조하는 수행이 갖춰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갇힌 인생을 벗어나기 어려운 게 삶의 한계다. 매사가 그렇듯이 우리는 이런 숙명과 환경이 점유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공동체에서 대표성을 지닌 다른 사람을 선출하거나 지지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선거라고 표현하는 민주사회의 대표적인 의사표시는 인연의 자연성과 부조리를 두루 갖춘 고약한 합의제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리가 공동체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신의를 결정하고, 지지하는 일이 그저 섣부르게 인정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선거가 신의보다는 호감에 따라 적당히 결정되거나 사회적인 성향과 유행의 척도를 갖게 마련이지만 여기에도 적잖은 모순들이 생긴다.

그래서 공동체의 목표에 대한 적당한 지향성을 정하고 정당을 만들거나 이념을 앞세우는 선동의 대중적 심리를 이용하지만 이런 제도적 포장도 결코 지역이나 인맥의 결속을 능가할 수 없는 연쇄적 함정이 늘 도사리고 갈등을 유발한다.

공동체의 지향성이나 건전한 사회가치가 이성적이라면, 지역과 인맥을 엮어내는 연고의 결속력은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 한켠으로는 지향적 가치를 부추기고, 다른 한켠으로 감성을 자극하거나 연고를 부추기는 선거방식이 늘 대립하고 합의점을 향해 충돌한다.

이 가운데 늘 결과를 지배하는 요인은 지향적이거나 이성적 가치가 아니라 현실적 연고에 의한 이해가 우선하고 타협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타성이 되어 온 지 오래다.

우리 사회가 선거라는 민주적 권리행사를 성장시키는 동안 수반되었던 온갖 부조리들, 이른 바 금권과 관권, 매수와 협잡들의 폐단은 어느만큼 정화되었다는 것이 정론이다. 막걸리와 돈 봉투에서부터 후보매수와 개표조작까지 오늘 만큼의 선거행태를 만들기까지 치루어 온 대가는 엄청났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최상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단을 악용한 권력의 횡포와 악행이 선거가치를 폄하하거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우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는 여야로 대칭되는 정당의 우월과 처지에 따라 상대적 상처와 존립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다수와 소수의 우열에 의한 모순이 오늘날에 와서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의 정치개혁특위가 만드는 모양새도 결국은 당리당략에 의한 아전인수의 선거제도 개편과 정당공천의 이해득실을 만드는데서 여전한 형편이다.

선거운동의 변형된 모순들, 이를테면 막걸리와 돈 봉투에서 관광버스와 사업이권의 제공 등에 이르는 광범위하고도 은밀해진 방법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하나같이 제거되거나 개선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없다.

혈연과, 지연, 학연들이 빚어내는 연고주의의 득세가 선거를 지배하거나 정당 우열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선거는 항시 부조리와 모순을 동반한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도 없다.

문제는 그 부조리와 폐해를 얼마나 줄이느냐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민사회 초미의 관심은 지방선거다. 아직도 과거 기득권 관행에 사로잡힌 후보들은 공천 여부가 민심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고, 여야의 우열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고 미리 전제한 행사일 뿐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미약한 야당 조직의 참여를 빗대어 들러리 선거라고 농을 한다.

민심은 물처럼 아래에서 흐름을 관조하는데 물 위의 기름층은 과거 선거관행과 공천놀음에 몰입되어 있다고 선거행태를 꾸짖는 시민들도 있다. 그런 물과 기름의 조화가 빚어내는 선거흐름이 또 다른 모순을 부를 참이다.

선거방식의 부조리나 연고주의의 이런 흐름이 지방자치의 미래를 담보한다면 끊임없이 기초자치단체 선거 무용론과 공천폐지의 요구가 이어질 전망이다. 물론 이런 현상들은 지금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잡음으로 지날 수 있다.

그들의 가슴에 빛나는 뱃지와 벼슬아치의 그릇된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한국형 정치공해의 단면이 가득한 선거가 되고 말 것을 지금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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