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리 계룡수필 회원

중환자실 앞이다. ‘절대 정숙’이란 글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독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입구에 걸려 있는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긴장된 가슴을 누르며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로 시야가 흐릿하다. 늘어선 하얀 침대들이 가슴을 압박한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환자들만 누워 있다.

아버지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앙상한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고. 얼굴은 핏기가 없이 백지장 같다. 다물지 못한 입안은 누런 물집이 잡혔고. 혀는 건조하여 갈라져 있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되시다니 영문을 모르겠다. 의식을 잃은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삼키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연세에 비해 아버지는 건강하셨다. 마을 친구 분들에 비해 외출도 잦았다. 아버지는 주로 집에서 가까운 대구로 나들이하셨다.

대구는 당신의 고달팠던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동고동락했던 옛 친구들과의 모임이 자주 있는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숨찬 전화가 왔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외출을 하게 되었다. 잘 다녀오시라는 가족의 인사에 응하며 계단을 내려가시다 그만 미끄러지셨단다.
다리에 큰 무리가 가서 지팡이가 있어도 예전처럼 혼자 출타하는 건 물론, 걷는 것조차 어렵게 되셨다.

친구 분들과 장기를 두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셨던 아버지. 가고 싶으면 떠나셨든 아버지의 길에 안개가 끼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의 상심도 클 것이었다.
아버지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몸이 약해졌다. 밥을 드시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당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병인이 있어야했다. 어머니도 연세가 있는지라 힘든 일을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큰오빠 내외도 아직 학생인 막내를 뒤치다꺼리 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 주변에 살고 있는 형제들도 매한가지였다. 다들 바쁘고 쪼들려서 맡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힘겹게 ‘너희에게 짐이 되기 싫다’고 말씀하셨지만 못나고 곱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라도 당신의 혈육에게 몸을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가족이 모여 의논한 끝에 두 해 전부터 이곳 노인 병동에 입원하셨다. 종합병원이라 어려움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처음 문병 갔을 때 하얀 침대위에 이불을 덮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왈칵 솟았다.

딸을 염려하여 핏기 없는 앙상한 손을 들어서 앉으라 하시던 아버지, 당신께선 어릴 적 어두운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워했던 딸을 위해 졸린 눈에 미소를 담으시곤 동행해 주셨는데 난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 옛날 든든했던 어깨는 좁은 침대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당신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볼 자신이 없다. 보면 볼수록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마음 속에 있는 작은 짐이라도 만회하고자 난 아버지를 찾아뵐 때마다 집에 모시고 갔다. 오랜만에, 그러나 잠깐이지만 아버지께 당신이 일구어 놓은 집에서 쉬게 하고 싶었다.

두 손으로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촉촉하게 땀에 젖어 온다. 탁자에 놓인 물수건을 접어 조심스럽게 손을 닦아드린다.

몹시 추웠던 겨울 저녁, 화로에 언 손을 녹이고 있는 나에게 털실로 짠 초록색 벙어리장갑을 선물해 주셨던 그 손, 어머니에게 꾸중 듣고 담장 아래서 서러운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조용히 눈물 닦아주셨던 그 손, 생선살이 가장 적은 꼬리 부분만 준다며 툴툴대고 있을 때 다른 형제들 눈치 못 채게 발라 건네주셨던 그 손, 낯선 남자의 안사람이 되는 날 떨리는 내 손을 꼭 잡아주셨던 그 손.

내가 닦아드리는 그 손은 일생동안 내 마음을 따스하게 적셔주는 아버지의 사랑이셨다.
침대 주위를 정리하다 아버지의 손을 이불속에 넣어드렸다. 아버지의 손이 차갑다. 그 따뜻했던 손을 내려놓고 이제는 서서히 정을 갈무리하시는 것일까.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은 아직 내 가슴에 뜨겁게 남아 있는데.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