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한동안 국내 정치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말 중에 경제민주화란 게 있었다.

경제전문가가 아니어선지, 모국어에 대한 공부가 모자라선 지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를 아직도 알지 못한다.

혹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주는 여러 병폐 가운데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재벌이나 기득권층으로 몰리는 부의 편중을 경계하는 정치적 방어수단의 하나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경제 불균형이 주는 사회양극화의 중심을 잡아보자는 경제적 균형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학문이나 정치의 표현들을 올바르게 합의하지 않은 채 함부로 사용하는 사례들이 부쩍 늘어 난 요즘에는 사회지도층조차 누구를 향한 표현인지 모를 경박함을 드러내고 있어 그 파급이 심히 우려된다. 

같은 시기에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참으로 새롭고 귀 기울일 만한 교황의 언행이 세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늘 복잡한 행로를 갈 때마다 유리박스에 근엄하게 들어앉았던 노쇠한 교황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껴안아주고 찾아가는 교황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이 종교지도자의 제스츄어 일 수는 있겠지만 자본주의의 폐해를 나무라고 부와 가난의 괴리를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누구도 이의를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가 도대체 가진 자의 부를 채우는,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자본주의로 가고 있다면 부와 가난의 양극화는 급속도로 심화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 양극화는 일정한 공동체 내의 양극화와 공동체 간의 양극화로 심화되어 마침내는 지구촌의 비극으로 드러날 것이고 인류의 또 다른 불행을 안길 것이다.

이런 우려 속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지닌 불균형과 비인간적 폐단을 경계하는 교황의 언행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그런 교황이 몇 개월 후 우리나라를 찾아온다고 했으니 방문을 통해 해석할 우리 사회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지도 관심사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사회양극화는 지금 심각하다. 지금 주거이전의 자유가 없는 공산독재사회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주거이전의 자유를 국가권력으로 통제하지만 자본주의 경쟁이 지나친 경우 그 주거이전이 자유나 권리로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 가난으로 아예 묶여 버리는 참담함을 안겨주고 있다.

지방의 어떤 서민도 서울 한강변의 소형 주택 하나 구해 갈 수 없는 구도가 그렇고 이런 현상들이 심화되면 가진 자들의 언행과 생활방식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제계급화의 특이한 사회구도가 공동체의 불화를 만들어 가게 마련이다.

거기에 무슨 행복정책이니, 통합이니 하는 구호들은 때로 무지하고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어서 계층 간의 불화를 더욱 양산하는 몰정치로 이어질 전망이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하고, 정책의 빈곤이 무리를 낳는다고는 하지만 무슨 결혼식 주례사 같은 관념적 용어들을 남발해서 대중을 납득시킨다는 발상은 어이가 없다.

시류에 맞지 않는 서툰 용어들, 현실을 도외시하는 단편적인 발상들, 미래를 말하면서 수 십년 과거 기득권이나 낡은 칼자루를 쥐고 앉은 정치용어들은 이제 불식되어야 한다. 

한 아이가 등장해서 말하는 아프리카 또래의 아이를 향한 불행의 단면이나, 권위의 옷자락을 땅바닥에 내려놓는 성직자의 겸손과 가진 자들을 향한 질타를 겸허하게 들을 수 있다면 새해부터는 그동안 우리가 막연히 말하던 경제민주화의 올곧은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온갖 분야마다 무슨 공기업이니 국가투자기관이니 해서 철밥통을 만들어 경제기득권의 울타리를 치고 공익을 빙자한 방만한 경제 진영을 구축하는 사람들을 정리해야 한다.

서툰 정책으로 성거래를 밀매화하고 도박을 권장해서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도시를 만들면서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서툰 장난은 이제 접어야 한다.

사회발전을 위한 민주적 요구를 이념적 사상적 이데올로기로 묶어 극단적 갈등을 부추기는 포퓰리즘도 지양되어야 한다.

특히 이런 혼란 속에서 다시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중앙권력의 눈치 보기나 어정쩡한 타협적 구도로 판을 짜내어 또 다시 몇 년간의 정체와 혼돈으로 이어지는 불행을 미리 막아야 한다.

유권자가 현명해야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일도 아니지만, 경제건, 정치건 그 중심과 바탕에 단호하고 정의롭게 버티고 있어야 할 민주의 가치가 늘 흐트러지고 권력과 부를 향해 부나비처럼 설쳐대는 해바라기나 선거꾼들이 판치는 행사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것은 저 바티칸의 근엄한 목소리를 다듬는 교황이나 이 땅의 시골구석까지 함께 나아가야 할 인간복지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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