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또 역사란 비록 어김없이 지나간 사실들을 근거로 알려져야 하지만 그것을 교육하고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역사관이 달라지고 정치적 사상적 이념이 대립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한반도에 있어 갑오甲午년의 주기가 주는 지난 120년 정도의 세월을 두고 지금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조차 국난과 수난의 상처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미몽迷夢의 처지에 놓여있는 형편이다.

갑오경장의 바탕이 되었던 동학란을 전후해서 한반도에 불어 닥친 개화의 열풍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얼마 전부터 온 나라를 영어학풍의 도가니로 만든 우연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고종은 주변 열강들의 난공을 의식한 후 서구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향한 파트너 쉽을 발휘하느라 1883년의 주한미국공사관 설치와 더불어 육영공원을 설치하고 요즘으로 말하면 영어교육을 진작시켰는데 그 대표적인 수혜자들이 이완용을 비롯한 당시의 친미파 외교요원들이었다.

고종의 친미정책이 실패한 것은 이후 미덥잖은 조선보다는 일본을 중시하는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알려진 시기로 친미파인 이완용 등이 친일파로 몰려가는 형세를 만들었다.

갖은 국난의 영향으로 쉽게 외세에 순응하는 이른 바 사대주의의 악습과 주체를 모르는 언행이 난무했던 갑오년 전후의 상황이 지금도 남북으로, 안팎으로 얽혀 입지를 고심해야 하는 현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지성인들의 개탄이다.

그 백년을 뛰어 넘은 오늘의 한반도는 과연 어떠해야 옳을까. 비록 고루한 관습과 당파에 얽매여 제대로 미래를 보지 못했다가 국난을 자초했던 선조들의 우를 어떻게 해석하고 미몽에서 헤어나고 있는 것일까.

당시의 열강들,- 동서남북으로 조여오고 간섭했거나 손짓하던 그 열강들은 지금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또 그런 구도보다는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모처럼 일군 경제적 기지개를 펴는 반토막 난 조국의 형편은 그 질곡과 수난을 교훈으로 제 처지를 다잡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각각일 것이다.

밤낮으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 내부의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파 놓은 함정을 겁 없이 지나다가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 함정이 되는 소인배적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그런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고나 있을까.

그저 동양사상의 천간天干으로 여기는 갑오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조부와 그 조부들이 스스로의 덫에 빠져 치욕과 수탈의 굴욕을 경험한 하나의 매듭일 수 있고, 전화위복의 의연한 교훈과 각성을 가져다주는 시기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흔히 해가 바뀌는 속도가 나이처럼 달린다고들 한다. 그 속도는 여명이 밝아오고 정오를 지나 한낮이 되기까지의 밝음과, 석양으로 가는 해거름과 으스름의 어두워드는 감지만큼 당연히 빠른 속도로 체감하는 한계성일 것이다.

올해는 그런 말이 또 달려 갈 참이다. 온 나라가 갑오경장 이후의 왕실과 관리들처럼 영어교육 열풍에 빠져있고, 마치 그때처럼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가 극동을 에워싸고 각축하고 있는데 제 영토마저 동강 낸 처지로 그 많은 선열들의 아우성을 귀 막고 눈 감은 채 느끼는 갑오년의 감회를 지금 묻고 싶다.

혹은 민족의 진운이나 국운의 거창한 명제에 앞 서 제 나라 글과 말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처지로 특정 언어의 흉내와 추종이 출세의 동아줄인양 매달려 재산과 세월을 쏟아 붓는 세대들에게 언어를 알고 문학을 접하기 전에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자각과 인식부터 가져보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다.

느낌과 자각에서 말과 행위로 이어지는 인격의 공동체가 곧 사회이고 그 사회의 보편적인 굴레를 국가라고 여긴다면 나라말의 당위성과 외국어의 교육적 필요성마저 혼돈하는 어리석은 위정자들의 방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비루하고 옹졸하며 폐쇄된 궁중의 대문 앞에 매여있던 조선의 꿈을 실은 말이 이제 상처를 털고 갈기를 곧 세우며 해묵은 위협과 위세로 앞을 가리는 열강들을 제치고 당당히 달려가는 갑오년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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