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신문 제11회 독서감상문 [고등부&일반부 최우수]

▲ 문성희/회사원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어언 17년 세월이다. 굳이 사이가 좋지 않은 모녀사이였기에 엄마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일도 없고 사이좋게 지내는 모녀를 훔쳐보듯 바라보는 일도 나에겐 없다. 드라마 상에서 보이는 모녀지간의 다정한 모습은 작가가 만들어 낸 하나의 허상이며 이 세상에 안 싸우고 사는 사람은 없고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식의 자위를 하며 나와 엄마의 관계도 그렇게 단정 지었다. 부재의 아픔보다는 상처에 새살이 돋고 그 자리에 더 굳은살들이 앉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잊고 지낸다.

회사일이 많아 개인적 시간을 가지기가 힘들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있는 상황인 내가 구태여 시간을 내어 책을 들고 독서를 하는 일은 드물다. 같이 지내고 있는 언니가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시간만큼은 책을 읽자는 의미로 그곳에 책을 항시 가져다 놓고 내가 읽었는지 확인 하는 것 없이 그냥 두었다가 다시 새 책을 놓아두곤 한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을 접했던 나는 처음에는 그냥 시큰둥한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고 싶은 놈이 울 이유를 찾는 듯 한 제목,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냥 그렇게 언니의 손을 타고 있던 책을 잡았다. 베스트셀러여서도 아니고 울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도 아니다. 손에 잡혀 그냥 넘겨진 페이지에서 나의 엄마가 그러하듯 그렇게 사라진 한 여자가 있었다.

바쁜 자식이 차려주는 생일상을 받기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오늘날의 부모의 모습을 한 부모. 신랑은 마누라를 잃어버리고 자식은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에 자식들은 어머니를 찾으려하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어머니와 만나게 된다. 물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너의 엄마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잖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길을 잃어 없어진 엄마의 흔적을 찾고 세상의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엄마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인 그녀. 갑자기 쓰러져 이별의 시간조차도 주지 않고 떠난 그녀의 흔적에 한동안 매달렸던 나. 그들의 입장과 뭐가 다른가하는 생각을 가진다. 주인공 엄마가 자신의 시동생에 애착을 보이던 과거가 나의 어머니가 북에 두고 온 오빠를 평생 그리며 살던 과거와 만났고, 삶을 힘들게 하는 남편을 대신해 아들에게 인생의 목표를 걸었던 그녀와 나의 어머니가 겹치면서 나는 이 글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도 혼란스러워했다.

버려지듯이 세상에 남은 것 같아 배신감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싫어한 세월 나의 잘못인 냥 형제들에게 미안했던 죄책감(쓰러지시던 그날 엄마와 나는 마찰이 있었다. 그리곤, 보란 듯이 엄만 떠났다.) 좀 더 잘했으면 하는 후회, 이런 감정들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아 괜히 상처를 건드려 덧나게 만든 것과 같은 낭패감마저 들었다. 웃긴 얘기지만 이 책을 읽은 시기에 난 꿈에서도 그녀를 만났었다.

내가 엄마의 부재 후 당황스러웠던 것은 세상의 누구도 나를 천금같이 대하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누구도 나를 천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든든한 빽이 사라졌다는 것에 당황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변해가는 나를 알고 싶어 하고 가까이에 있고 싶어 했으나 밀쳐내어지기만 했던 하느님 대신의 존재.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나를 천금같이 여겨줄 인간을, 엄마를 대신할 존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존재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나는 엄마라는 굶주림에 허덕이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순간에서야 소중함을 깨달은 나 같은 사람에겐, 쓸쓸한 향수를 주면서 지켜야 할 것이 남은 이들에겐 '좀 잘하자,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라며 이 책은 잠언과도 같이 속삭이고 있다. 부모를 보호할 나이가 되었건만 지켜주지 못한 작가는 자신의 엄마를 신에게 건네 보낸다. 잘 봐달라… 내가 손을 놓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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